[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21.달걀부리 마을을 아세요?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21.달걀부리 마을을 아세요?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6.1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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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하는 친구가 바쁘다며 커피잔 세트를 몇 개 사달라고 한다. 알고 보니 개업할 때 메인 머그잔만 작가의 비싼 작품으로 하고 그 외의 종류별 식기류는 이케아에서 조달했던 모양인데 몇 년 쓰다 보니 깨져 못쓰게 된 것도 있으니 수량을 채우기 위해서 가까운 곳에 산다는 죄로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뚜벅이 11호는 거절 못한 나의 마음과는 달리 우직하게 피곤하다는 말도 못 한 채 버스를 탔다. 도자기라서 무거울 것을 생각하니 살짝 마음이 더 무겁다. 그래도 어쩌랴 바쁜 친구 도와줘야지. 코로나19 전에는 카페가 항상 바빴다.

북악산 서울 도성 둘레길과 연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창의문 옆에 한옥 카페라서 인기가 높다. 주말에는 북적북적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호황이다. 지금이야 혼자 일하기 딱 좋다고 하면서도 은근 수입이 반토막 났다면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휴, 얼른 코로나19가 끝이나 친구의 얼굴이 펴졌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케아를 가던 중에 "다음 정류장은 달걀 부리 마을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달걀 부리? 닭도 아니고 달걀이 부리가 있었나? 이런 지명이 의아해 머리를 갸웃하고는 몇 개월이 훅 지나갔다. 너무 궁금해도 궁금증을 풀기 어려웠는데, 산으로 가던 산책을 창릉천으로 방향을 바꿔 이케아가 있는 도래울 마을 방향으로 확장해서 걷고 있다가 달걀 부리 마을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오예~

표지판을 읽어보면 달걀 부리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일명 금계 포란(金鷄抱卵)형 명당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금계 포란은 황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으로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어머니 품속 같이 평안하고 후손들은 황금달걀과 같이 크게 발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계 포란의 안산(安山)줄기가 동쪽으로 이어져 마을 입구에 있는 산 부리가 달걀 모양 같다고 하여 달걀 부리란 이름이 붙여졌으며 점차 발음이 순화되어 달걀 부리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달걀 부리마을 번영회)

삼송마을에서 바라본 달걀부리 마을

자주 이곳을 지나다니면서도 이렇게 좋은 뜻과 유래되는 마을의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되었다. 새나 닭의 주둥이를 부리라 하니 닭의 부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부리 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이 아주 큰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표지판에 적혀 있는 {슭마노르님의 블로그}에 들어가 달걀 부리의 어원(語原)에 대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공부를 하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지금부터 고대 국어 공부를 시작해 볼까요?

원래 부리란 아주 옛날 넓고 큰 땅, 살기 좋은 곳을 가리키는 말이 있었는데 [불/bur]이었다. [불]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부르부리라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마다 발음이 조금씩 달랐다. 은 현대 한국어 벌판의 어원(語原)에 해당하는 말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불어나다, 벌어지다 같은 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에는 우리말 표기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한자를 빌려서 표기해야 했는데 어떤 한자로 어떻게 표기했을까? 지금 같으면 필드(Field)를 지닌 원(原)이나 야(野)같은 글자를 쓰겠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벌(伐)이나 부리(夫里)같은 한자로 음차(音借) 하여 표기한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音借; 외래어 등을 소리를 따서 표기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신라의 다른 이름 서라벌(徐羅伐)과 백제의 소부리(所夫里)다. 서라벌 과 소부리는 모두 [srbur] 정도로 발음되었던 순우리말을 한자로 차자(借字)해 적은 것이다.(* 借字; 한자의 본래 뜻과는 관계없이 한자의 음이나 훈을 빌려 우리말의 음을 나타내는 글자를 말한다)

달구벌(達句伐)은 오늘날의 대구이다. 아주 크고 넓은 땅이란 뜻의 지명이다. 그럼 달걀 부리는 어떤 부리(벌판)를 말하는가? 달걀은 [닭+알]로 이루어진 말로 [닭] [알] 모두 광대(廣大)한 것을 나타낸다.고대어 [닥/ 달/ 단] 등은 모두 크고 넓고 높은 곳의 땅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달걀 부리도 마찬 가지로 달구벌(達句伐)과 같은 의미인데 크고 넓은 벌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그러므로 달걀 부리 마을은 광대한 벌판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어원(語原)을 따져보면 대구의 우리말 이름 달구벌과도 같은 말이며, 신라의 다름 이름 계림(鷄林)과도 같은 말인 것이다.

이 뜻을 가만히 들여다본 뒤에 다시 산책을 나가서 달걀 부리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 뒤에는 무성한 숲이 보였고 뻐꾸기와 산비둘기 우는 소리가 한가로이 들렸다. 요즘은 가끔 꾀꼬리도 아리따운 목소리로 노래를 해주어 산책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설명대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모습이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보여 주었으며, 마을 앞은 시대가 바뀌면서 도시화로 많은 개발을 하긴 했어도 너른 벌판이었음을 알 수 있듯이 창릉천 너머로 평화로운 들녘이 연상되었다. 예부터 물줄기인 시내나 강을 따라 기름진 평야를 이루었으며 마을이 발달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고양시의 달걀 부리 마을 명칭은 1914년 한반도 땅의 지명들을 수도 없이 교정한 일제의 간섭마저 피하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고대 스토리를 전하고 있음은 경이롭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에 의해 우리 땅 명칭이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속속들이 들여봐 보면 울화가 치미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 같다. 교정된 것 자체도 불쾌하지만 괘씸한 것은 그 교정으로 인해 많은 지명의 원래 의미가 증발해 없어졌다는 것에 있다.

괭이부리말의 아이들이란 소설의 제목에서 보는 괭이부리말은 지금 인천의 만석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말이라고 한다.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마을을 뜻하는 순우리말. 달걀 부리마을이란 고유한 우리말로 지금까지 내려와 준데 대해 많은 고마움을 느끼는 하루였다.

달걀부리마을 앞 창릉천의 왜가리와 가마우지.

*참고; 미디어리퍼블릭(http://www.mrepublic.co.kr)

네이버 [슭마노르 블로그], 다음백과

*사진; by young.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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