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6.딸과 친정엄마, 그리고 오이소박이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6.딸과 친정엄마, 그리고 오이소박이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5.19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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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소박이 김치
오이소박이 김치

엊그제 딸이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엄마, 외할머니 오이소박이 진짜 맛있었는데..."

"그래, 엄마는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어."

"할머니 배추김치도 엄청 맛있어, 칼칼하고 시원해."

"맞아, 난 김치가 자신 없더라. 할머니처럼 안돼." 하면서도

"오이소박이 간단해 만들어 줄게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장 보러 가야겠네 하니

"엄마 마켓컬*에 시킬게 엄마 무거워서 안돼." 평소에도 마트 들려 장을 봐오면 무거운데 들고 온다며 걱정하는 딸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넣었습니다. 새벽에 문 앞으로 배송을 해주니 너무도 편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좋습니다. 대가족으로 살면서 제사 지낼 장을 볼 때마다 두 어깨가 빠지도록 장을 봐서 날랐던 생각이 납니다. 방학이면 세 딸이 출동을 해서 각자 장바구니를 한 개씩 들어주던 착한 딸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딸은 점심에 일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밤리단길을 산책하자고 했었는데, 제게 갑자기 일이 생겨 급히 처리해야 할 일로 예약한 레스토랑엔 다음에 가기로 취소, 오전에 서울에 나갔다 와서는 딸과 근처 중국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 정식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딸이 엄마에게 맛난 것을 먹게 하려고 부득부득 코스 요리를 먹겠다는 것입니다. 내일 어버이날인데 부득이하게 컨테이너에 물건을 실어야 해서 셀프 효도를 하기로 했다며, 사위는 본가에 가고 저와 시간을 보내는 딸이 기특하고 대견하기도 하면서 친정 엄마가 떠 올랐습니다.

어머니 보다도 전 아직 엄마라는 어감이 더 좋네요. 정감도 있고요.

엄마가 자주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뵈러 올라갔습니다. 토요일 올라간다고 했는데연락도 안 드리고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금요일 저녁, 늦게 엄마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

"응~? 내일 온다더니?"

"하루라도 일찍 보려고 올라왔어요 ㅎㅎㅎ~"말없이 반가운 표정만 보이시는 엄마.오느라고 고생했다며 그 늦은 시간인데도 밥을 차려 주시겠다고 불편하신 몸을 움직이시는 것을 간신히 말려 앉혀 드리고 얘기부터 나눕니다

."너 아플 때 한 번 가 보고 싶었는데 못 갔다."

"내가 오면 되는데 힘들게 왜 오세요.. 그래서 이렇게 왔잖아요." 하룻밤 함께 누워 자고 싶어서 조기 퇴근하고 서울로 향했던 것입니다. 엄마도 만나야 하고, 곧 러시아로 떠날 막내딸도 만나야 하는 일들이 순서를 정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이 나쁘시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고,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지실 거라서 더 이상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심했어요.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이야기 나누고, 차려주시는 구수한 된장찌개로 아침밥을 먹고 또 길을 나섰어요.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요.그리고 막내딸에게 가서 함께 시간도 보내야 하니까요. 외손녀를 보고 싶어 하시는 엄마를 위해 막내를 데리고 다시 친정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지요.

막내와 만나서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풀고 함께 나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며 수다도 떨었습니다. 밤에는 근처 시장에 나가 구경도 하는데 바람이 세차서 다시 겨울이 온 줄 알았습니다. 새벽까진 비가 내리고, 아침엔 햇살이 눈부시게 청명한 봄날인데 갑자기 하늘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제가 서울에 왔다고 환영인사를 하는지 흰 눈도 내려 주더군요. 아무튼 바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너무도 빨리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주일 아침 막내와 함께 근처 예배당에 다녀온 뒤, 애타게 기다리시며

"출발은 했냐" 시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며 영등포로 향했습니다. 엄마는 또 불편하신 몸으로 찰밥을 만들어 놓으시고, 겉절이를, 광어회와 막내가 좋아하는 생굴을 차려놓으시고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엄마의 정성스러운 상차림에 불효한 딸은 그저 맛나게 많이 먹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막내와 저는 평소에 먹던 양의 몇 배를 먹는다면서 맛있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니 엄마는 또 보따리 보따리 싸주시는 것입니다.

막내에게도 찰밥과 겉절이를 싸주시고, 먼 길 가는 제게 또 그동안 못해주셨다면서 김치를 싸고, 깻잎김치, 짭짤한 장아찌를 담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편찮으시면서도 자식 위해 몸을 아끼시지 않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풍성하게 보자기 대신 캐리어에 담아 넣어 부산까지 끌고 왔습니다.

첫째와 둘째 딸은 " 외할머니 그러실 줄 알았다."면서 찰밥에 새김치 얹어서 장아찌와 함께 넉넉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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