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32.미더덕 젓갈 비빔밥과 보리수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32.미더덕 젓갈 비빔밥과 보리수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7.23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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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랭이 꽃

어제 경남 용원 둘째 딸 집에서 올라와 아무 생각 없이 쉬기로 한다.

오전에 해야 할 일로 서울로 나가 남대문 재료상가에 갔지만 코로나로 토요일엔 영업을 안 하겠단다.

발길을 돌려 동대문 종합시장으로 간다. 그곳도 군데군데 원단 시장은 휴무. 다행히 지하의 필요한 매장은 문을 열었다. 펄프로 만든 종이실 세트를 사고, 5층으로 올라갔더니 그곳은 다행히 호황으로 벌써부터 고객들이 많다.

필요한 원석을 몇 가지 구입하고 바로 돌아왔는데도 점심때가 된다.

둘째가 미더덕 젓갈을 선물로 받았다며

" 엄마, 이거 유정이랑 비빔밥 해서 드세요. **엄마 미더덕 하나하나 까서 만들었다는데 귀한 거니까."

" 너희 먹지." 했으나 동생에게 먹이고 싶은 언니의 마음인지라 얼음팩을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내 가방 속에 넣어 줬었다.

<12시 30분쯤 도착할 거 같아. 오이 사 갖고 갈게. 미더덕 젓갈 비빔밥 해 먹자.>

<오이 제가 사놓을게요.>

집에 도착하니 압력  밥솥은 열심히 밥을 만들고 있다. 딸내미는 이미 오이채를 수북하니 썰어 놓았다.

*가지나물, 우엉채, 오이채와 미더덕 젓갈 비빔밥.

오랜만에 바다향이 나는 미더덕으로 인해 박서방은 미더덕향이 묻힐까 봐 참기름도 넣지 않고 비볐고, 난 젓갈이라 하니 짤까 봐 희석시킨다고 참기름 한 방울을 넣었다. 막내는 김을 비벼 가루를 내어 섞었는데 각자가 입맛에 맞게 비벼져 소박하지만 오랜만에 부산에서 나고 자란 딸과 사위는 미더덕으로 인해 잊혔던 바다 그리움까지 함께 먹은듯하다. 이곳에서는 미더덕 사촌 격인 오만둥이만 많이 보이고 미더덕은 눈에 띄지 않아 아쉽다.

예전보다 많이 잡히지 않는다더니 미더덕은 귀하신 몸이 되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은 후에 커피 한 잔 내려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쉬어야겠다며 들어와서는  그대로 잤다.

용원에서 강행군을 했던 것이 이제 나타나는지 피곤하다.

아침에도 눈이 선명하지 않은 느낌이어서 애꿎은 안경만 여러 번 닦고 또 닦았다.

*보리수 열매가 익었다. 남쪽엔 다 따먹었는지 빈 보리수였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며칠 보내지 못한 골프경제신문에 보낼  원고를 쓴다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으니  딸이 저녁엔 메밀 소바를 먹자며 얼마 전에 사다 놓은 라면을 꺼낸다.

엄만 피곤할 테니 가만히 엄마 할 일 하라며 주방엔 접근 금지다.

생메밀은 삶을 때 조금 힘이 든다. 익을 때까지 잘 저어주지 않으면 냄비에 달라붙어 애를 먹는다. 넘치기는 왜 그리 잘 넘치는지... 그래서 라면처럼 해놓은 메밀면을 사다 놓았는데 생메밀보다는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어 더운 날 한 번쯤은 괜찮을 것 같다.

*패랭이, 개미취

편하게 저녁을 얻어먹고는 해가 넘어가는 빛을 느끼고"노을 보러 갔다 올게" 하고 나와 둑길을 걸었다.

며칠 안 본 사이에 보리수 열매가 붉게 익었다. 용원의 보리수 열매는 하율이가 다 따 먹어서 열매가 한 개도 보이지 않은 보리수였는데~^^

"할머니, 보리수 열매 맛있어서  따 먹었어요." 하율이는 친구들과 보리수를 따서 갖고 놀기도 했다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는 에너자이저인 하율이가 벌써 보고프다.

*자주개자리, 개망초.

솔개천 둑의 풀꽃들아 반갑다.

나 없는 동안 잘 있었니?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들여다본다. 금계국도 여전히 무성하게 숲을 이루고 사이사이 패랭이와 개미취, 갈퀴 나물이 어우러져 있다.

개천에는 갈대가 웃자라 푸르른 보리밭을 연상케 한다.

*갈대

눈에 익은 풀꽃 아이들을 바라보며 마음은 더없이 평화롭다.

쫓기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여러 도움들이 주변에 있어주므로 감사한 일이다.

평온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딸들이 있어 고맙다.

*창릉천 다리에서 본 물줄기.

해님이 넘어가는  분위기이나 아파트 숲에 가려져 해넘이를 볼 수 없어 안타깝다. 사진도 여의치 않네.

*해넘이

저녁나절 한가로이 풀꽃들을 만나며 아파트 숲과 숨바꼭질하듯 지는 해를 바라보다 들어온다. 새로운 꽃이 개천 너머 둑에 보여 고개를 빼고 보나 잘 보이지 않아 돌다리를 건너가서 보니 우리 동네에서 처음 보는 꽃이다.

폭풍 검색을 하니 '동자꽃'이라는 이름의 풀꽃이다.

*동자꽃.

꽃말은 "나의 진정을 받아 주세요"라고 하는데 진한 주홍색, 백색, 적백색의 종류가 있고 여름꽃이다.

스님을 기다리다 죽은 동자를 묻은 곳에서 피어났다는 아픈 전설이  마음이 애잔해지며 꽃 한 송이가 애처롭게 보인다.

*꽃이 다 지고 열매 맺고 있는데 뒤늦게 핀 흰말채꽃, 열매.

저녁 산책을 하며 풀 꽃들에게 안부를 묻고, 새로운 꽃을 보게 되어 오늘도 무심하게 보낸 하루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짚신나물,  갈퀴나물.

* 어렸을 때 많이 보았던 패랭이꽃. 나비처럼 모습이 예쁘다.

*참고; daum.

*사진; 신영.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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