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2.손녀와 조갯살 파스타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2.손녀와 조갯살 파스타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4.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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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을 바닷가 따라서 쭈욱 걸어 본다.

한쪽에서는 갈매기가 노닐고 먼 바닷물에서는 검은색 물닭이 미끄러져 나아간다.

걱정 근심 없어 보이는 그들이 이 아침 가장 부럽다.

볼거리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길이지만 물이 들어와 찼을 때와 물이 빠져나갔을 때의 풍경은 많이 다르다.

평지이자 바다를 끼고 있어서인지 굴 막이 나래비로 서 있다. 굴 껍데기가 쌓여 있어 굴 껍데기로 바다를 메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로 굴막 뒤엔 굴 껍데기 매립지가 형성되어 있다.

마음을 가라 앉히거나 사색하기에 걷는 것만치 좋은 것은 없다. 곧 서울로 향할 것이다. 브런치 북을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손도 못 대고 있다.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브런치 북 발간 일림이 떠서 마음이 살짝 초조해진다. 다른 작가들은 참 쉽게도 만들어 올리는데 난 왜 이렇게 굼뜰까?

진해와 통영 여행을 마치고 하율이를 보러 둘째 네로 왔다. 두어 달 만에 보는 하율이는 벌써 또 예쁘게 자랐고 의젓하니 말하는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며칠 있으면서 '눈에 넣으면 아파요'를 떠올리니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딸에게 조금만 걷겠다며 나왔는데 걷다 보니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걷다 보면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만다.

굴막에서는 아주머니들이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와 굴까는 소리가 달그락달그락 들린다.

굴막 앞의 매대엔 껍질 그대로의 굴 접시와 생굴을 담은 큰 대야가 보인다.

맨 끝의 굴막에 통통한 바지락살이 가득한 그릇이 보여 어떻게 파느냐 물으니 1kg 싹 판매한다고 한다. 1kg 이면 많은데 하면서도 머릿속엔 점심으로 파스타를 만들고 나머지는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 두었다가 된장찌개나 시래깃국 등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아 사 든다.

집에 들어서며 딸내미에게 봉지를 건넨다.

"30분만 걸으신다더니 벌써 1시간이네. 이게 뭐예요?"

"바지락 살인데 살이 통통해. 통영 바다 깊은 데서 나온 거라는데 일반 바지락 하고는 차원이 다르네"

"엄마가 만드시는 거 봐 뒀다가 나중에 만들어 먹어야지. 하율이도 담백한 것 잘 먹어요."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한번 헹구어 파스타에 넣을 것을 덜어 놓고 소분해서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넣는다.

"마늘은 있니?"

딸내미도 엄마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마늘 봉지를 꺼내 보이며

"이 정도면 될까요? 버터는 다 썼는데 편의점에 있겠죠?"

"마트에 다녀올게. 조금 더 걸어야 하는데"

"엄마 커피부터 드세요. 오믈렛 해서 드리려고 아까부터 준비하고 엄마 기다렸어요."

함께 여행한 정아 씨 남편이 통밀빵을 구워 선물했는데 그 빵을  얇게 잘라 오믈렛과 함께 놓아준다. 호두와 건포도를 듬뿍 넣어 만든 빵은 완전 건강식이다.

마트에 가서 버터와 마늘을 추가로 더 사서 돌아오는 길에 너도 나도 봄을 즐기러 나온 봄꽃 사진을 찍으며 돌아와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딸내미가 기름진 음식보다 담백하고 깔끔한 음식을 좋아하다 보니 재료도 간단한 데다가 오늘처럼 좋은 조갯살을 만나니 파스타 만들기는 즐겁다. 재료도 초 간단, 마늘, 면, 버터, 소금만 있으면 된다.

 녹인 버터에 마늘을 노릇하니 굽듯이 볶다가 소금으로 간을 한 뒤 조갯살을 넣어 볶는다. 소금으로 짭짤하게 볶아야 나중에 파스타를 먹을 때 싱겁지 않고 제 맛이 난다. 포크로 마늘 한 쪽에 조갯살을 꼭 찍어서 면을 말아 입에 넣으면 짭쪼름한  바다 향기와 함께 쫄깃한 조갯살이 입안 가득 행복한 느낌인 것이다.

파스타면 삶은 뜨끈한 면수를 부어도 좋으나 원래는 조갯살 데친 육수를 부어서 먹는 것이 더 진한데 입맛에 맞는 쪽으로 국물을 떠먹으면서 먹으면 목이 메이지도 않고 조갯살의 쫄깃한 식감이 살아 있어서 감칠맛이 난다. 서울에서는 바지락을 삶아 껍질을 까거나 조갯살을 사 보아도 납작하니 살품이 없는데 오늘 이 아이들은 정말 오동통해서 바지락 살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이다. 서울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싱싱한 해산물을 가까운 곳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율이도 유치원생이 되더니 제법 파스타를 잘 먹으면서도  한마디 한다.

"엄마, 난 빨간색 스파게티가 좋아."

"그래 그래~ 다음엔 토마토랑 쇠고기가 듬뿍 들어 간 토마토 페이스트 스파게티를 만들어 줄게~" 하며 웃어 본다.

딸, 손녀와 함께 삼대가 모여 먹는 점심의 한 때는 자주 즐길 수 없는 시간이라서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젖먹이 손녀가 벌써 자라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파스타를 즐기는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브런치 북은 아직 시일이 남아 있으니 천천히 하자. 여기 있을 때에는 이곳에 집중할 일이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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