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9.솔개천 흐르는 삼송마을의 매력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9.솔개천 흐르는 삼송마을의 매력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6.08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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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릉 누리길

삼송 마을에서 새 삶을 시작한 지도 2년 차가 되어 간다.복잡한 도심에서 살다가 한적한 마을에서의 생활은 기지개를 활짝 켜고 하늘 향해 뛰어오르는 기분이랄까?한마디로 너무 좋다. 처음엔 지리를 몰라서 많이 허둥댔다. 예전에 살던 곳은 동네마다 한 두 개씩 있는 목욕탕이 이 동네에는 보이지 않아서 불편했는데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살다 보니 매력 있는 마을인 것을 차츰 깨달아 가고 있다.제일 좋은 것은 가까운 숲에 들어가서 새소리를 듣는 것이다.

딸이 일산에 살 때 일산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계획도시답게 획일성이 있었지만 널찍한 공원이 곳곳에 있어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가까운 호수 공원을 거닐 때는 꽃나무도 많고 장미정원에 각양각색의 장미들을 보면서 좋아했다.그런데 애들이 삼송마을로 이사 오면서 살게 된 이곳은 우선 서울이 가까워서 마음에 든다. 큰 호수는 없지만 창릉천 따라 걸으며 왜가리와 백로들을 볼 수 있으며, 가끔은 원앙새와 꿩도 만난다. 그 꿩 사진을 멀리 찍어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삭제한 것이 마냥 아쉽다. 요즘에는 꿩이 눈에는 안 보이고 ' 나 꿩, 꿩!'만 외쳐대는 소리만 들린다.

약수터 가는 길

원래 삼송마을은 서삼릉의 입구에 세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서 삼송리(三松里)라고 하였고, 솔바람 공원, 세솔로, 솔개천 등 소나무를 지칭하는 이름이 많다. 지하철이 들어서면서 역 이름을 삼송역이라고 붙였다. 서울에 있는 직장을 다닐 때에는 삼송역까지 걸어 다녔다. 20분 정도 걷는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워밍업이 되어 좋았다. 집에 돌아올 때도 큰 불편이 없는 한 운동삼아 걸어서 들어왔다. 이제 집에서 쉬게 되니 걷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 동네를 구석구석 샅샅이 돌아보게 되었는데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서삼릉, 서오릉이 있고, 멀리는 행주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앞쪽으로는 걷기 좋은 창릉천 길이 있으며 창릉천 건너편은 동산 마을이며 밥할머니 공원과 스타필드라는 대형 쇼핑몰이 있다.

뒤쪽으로 나가면 나지막한 야산과 연결되는 길이 있어서 숲길을 걷고 싶을 때 자주 가게 된다.아파트 단지에서 창릉천으로 내려갈 때 만나는 작은 솔개천은 약수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저류지로 흘러가는데 1년 내내 졸졸졸 흐른다. 작년 장마철에는 물이 불어나서 갈대와 부들이 잠기기도 했다. 이곳엔 부들도 무리 지어 있어 부들이 피었을 땐 장관이다.겨울에서 봄까지 청둥오리 무리들이 놀러 와 물속을 헤집으며 먹이를 찾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들의 열중하는 모습이 경이로워 한참씩 들여다볼 때가 많다. 이제는 다들 날아가고 눌러앉아 텃새가 되어버린 오리 몇 마리가 반갑게 눈에 띈다. 솔개천은 길냥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하고 그들에겐 맛난 샘물이기도 하다.

솔개천에서 놀고 있는 오리들

솔개천은 솔바람 저류지로 쪽으로 흐르다가 창릉천으로 합류한다. 저류지엔 갈대가 빼곡하니 가득하다. 여름이 되면 황소개구리들이 황소울음소리를 내는 곳인데 올여름엔 매일 놀러 오는 왜가리나 백로가 많이 잡아먹었으면 좋겠다.

산에 오르면 왼쪽으로는 서삼릉 누리길, 오른쪽으로는 한북 누리길로 이어 진다. 왼쪽으로 걷다 보면 골프장 뉴코리아 CC 울타리를 끼고 오르락내리락 울퉁불퉁한 길을 걷는다. 약수터와 농협대학교로 길이 나뉘지만 어느 길로 가던 홍익교회 숲 비전센터 부지를 지나게 되고, 또 한 곳에서 만나 농협대학교를 지나서 서삼릉과 종마장으로 갈 수 있어서 좋다.오른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내려가다 오르막 길 중간쯤에 거북 바위를 만난다.

거북바위

오래전, 북한산에서 살다가 창릉천을 따라 내려왔다가 돌아가지 못한 거북이라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묻힌 다리가 땅 위로 드러나면 창릉천 개울이 마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고 한다. 전진하다 보면 작은 요새 같은 장치들을 볼 수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군부대가 있다. 이 길도 한 참을 오르락내리락 걷다 보면 고양고등학교 부지를 만나게 되고 삼송역으로 가는 도로와 만나게 된다.한 번씩 서울에 나갈 때면 40분 정도 미리 출발을 해 이 산을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삼송역에 가서 지하철을 탄다.

물구나무를 서는 오리
물구나무를 서는 오리

군부대가 보이는 곳에서 아랫길로 내려가면 한우물 저류지가 있어서 그곳에도 오리 몇 마리가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노는 것이 귀여워 사진을 찍었다. 집에 와서 딸에게"오리가 물구나무서기를 하더라." 하며 사진을 보여 주니 딸은

"엄마 이건 물구나무서기가 아니고 자멕 질을 하는 거네. 봐봐, 물구나무서기랑 다르잖아?" 한다.

딸은 요가를 했기 때문에 물구나무서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나는 오리가 꽁지를 하늘로 올리고 머리를 물속에 담그길래 '오리가 물구나무서기를 하네? 신기하다'며 재밌어한 것이다. ㅎㅎㅎ~

찔레꽃
찔레꽃

이 동네에서 제일 불편했던 일이 목욕탕이 멀리 있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창릉천 따라 50여분 걸어가면 도래울 마을에 진입을 한다. 하루에 10000보 걷기를 꾸준히 하고 있기에 이제는 목욕탕이 멀어도 불편하지 않다.부산에 있을 때는 온천이 많아서 온천욕이 하고 싶을 때는 동래 온천이나 해운대 온천을 친구와 함께 가기도 하지만 혼자서 다니는 것을 좋아하기에 수시로 해운대에 있는 온천을 이용하고 해운대 백사장 걷는 것을 좋아했다. 바닷가에 키 큰 소나무가 많은 송림 공원이 있어서 그곳을 둘러보며 꽃 사진을 즐겨 찍었다.
목욕탕 검색을 하니 도래울 마을과 신원 마을, 원당 등 다 버스를 타거나 자동차를 이용해서 가는 길 밖에 없는 곳이었다.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집 앞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도래울 마을에 있는 목욕탕인데 찜질방 겸용이지만 동네 목욕탕 같아서 좋다. 초행길엔 버스를 타고 가면서 지리를 익힌 후에 돌아올 때는 운동 삼아 창릉천을 따라 걸어서 돌아왔다. 그 후론 주로 걸어 다니는데 걸으면서 갖가지 식물과 풀꽃을 보며 사진도 찍어 기록을 남기는 취미생활이 풍부해진 것이다.

꽃사과

모르는 꽃은 집에 돌아와 사전을 찾아보며 이름을 익힌다.안타까운 것은 미국 말냉이, 북아메리카 원산인 가시박 등 귀화식물이 둑을 덮는 것을 보고 발을 동동 구르는 심정이 된다. 토양을 산성화 시키고 말냉이는 키가 크고 그 자체로 밀림을 이루는 것 같은데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막는다고 한다.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실 도래울보다 더 가까운 목욕탕이 스타필드에 찜질방 겸용 아쿠아랜드라고 있다. 처음에 목욕탕 찾아 삼만리 할 때 그곳을 알려 준 동직원이 있어서 갔는데 무려 21000원이라는 요금을 냈다. 찜질방을 이용하지 않는데도 요금이 같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목욕을 하고 온 적이 있어서 이후론 간 적이 없다.

둑 아래의 개울로 내려가 보면 어른 팔뚝 만한 잉어들이 버들가지 숲에서 펄떡이며 노는 모습이 보인다.아침에도 아까시 꽃 따라 맞은편으로 건너는 다리를 지나는데 버들가지 숲에서 물길 차올리는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보니 잉어 서너 마리가 뱅뱅 돌며 헤엄을 치며 논다. 꿀벌이 꿀을 빨고 있는 아까시꽃은 어릴 적에 엄마가 떡시루에 쌀가루와 버무려 쪄서 주면 달큼한 맛이 좋았다. 하얗고 탐스러운 꽃송이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 창릉천은 귀한 물길인 것은 틀림없다. 새들의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수변 식물들이 물을 정화시키고 겨울엔 얼음이 얼어 동네 아이들이 썰매를 타기도 하며 얼음을 지치며 노는 한가로운 풍경이 있어서 좋다.철 따라 온갖 풀과 꽃나무들이 싱싱하게 자랄 수 있는 풍요로움의 원천이라는 생각이 든다.

창릉천의 상류지역은 옛 기록에 청담천이라 하였고, 중류 지역인 삼송동, 지축동 일대는 덕수 천, 일반적으로는 창릉천으로 부르고 있다. 창릉이란 명칭은 인근 서오릉 내에 창릉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또 창릉천은 주변 마을 일대에서 선사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어 오래전부터 고양시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창릉천昌陵川 이야기 참조)

사위와 딸은 일산보다 인프라가 형성이 덜 돼서 불편하다고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이 곳이 조용하고 쾌적해서 좋다. 아파트 단지도 널찍하고 꽃의 도시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꽃이 있다. 겨울철엔 마른풀이 둑에 가득하지만 말이다. 대로변에 있지 않아 창문만 닫아 놓으면 자동차 소음도 들리지 않아서 좋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취미로 바느질도 하고 브런치에 들어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가님들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휙 하고 지나간다. 이렇듯 평화로움이 지속될 때 괜한 불안이 스치기도 한다. 그동안 종종걸음 치며 바쁘게 살아온 세월 때문인지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난 아직도 가끔 어스름 해 질 녘에 귀가하는 일이 익숙지 않다. 집안에 시어른이 지키고 계시니 항상 빨리 들어가서 저녁 준비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젖어 살다 보니 외출해서 뉘엿뉘엿 해가 질 때면 불안한 가슴이 떨릴 때가 있다.

그런 나를 보며 딸이 "엄마, 엄마 밤새우고 들어오셔도 누가 뭐랄 사람 하나도 없어요. 아직도 그래요? 에구구." 한다.

이곳은 시시때때로 해넘이를 볼 수 있다. 위치상으로 서북부가 되다 보니 산책하다가 붉게 물든 하늘을 볼 때 가 간혹 있다. 미세먼지, 황사가 없는 날은 참 아름다운 노을이다.

오늘 백신 예방 접종 예약하라는 문자가 와서 주민센터에 가서 예약하고 들어가는 길에 창릉천을 흐르는 물 위로 해넘이 윤슬이 자글거릴 것이다.

왜가리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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