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3.밥할머니 공원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3.밥할머니 공원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5.05 09: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끔 남대문 시장에서 액세서리 재료를 구입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지하철이 멀어서 시간은 걸려도 버스를 타게 된다. 우리 동네 가는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바쁠 때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중간에 내려 지하철로 환승을 할 때도 있지만, 버스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어서 버스를 선호할 때도 많다. 두세 정거장 전에 내려서 창릉천을 걷다가 집으로 가면 걷기 운동이 되어 적당히 피곤하면서도 몸은 개운함을 느껴 참 좋다.

파크볼장

어느 날 정류장 안내 방송을 듣는데 '용사촌 입구 밥할머니 공원입니다.'라는 방송을 듣게 되었다. 밥할머니 공원? 정류장 이름이 생소하기도 하지만 보통 지명 이름이라든가 근처의 학교, 큰 기업 이름 등이 익숙한데 밥할머니 공원은 궁금증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에 산책을 일부러 그곳으로 나간 적도 있었는데 공원은 작았다. 조그만 연못이 아래 위로 연결되어 있고 철새인 오리들도 놀러 와서 물장구도 치고 근처엔 파크볼장도 있어서 어르신들이 볼을 치며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밥할머니 석상
밥할머니 석상

서울 시내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밥할머니 공원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종로에서 버스를 타고 무악재에서 환승을 하면서까지 밥할머니 공원에서 내렸다. 날씨는 청명하고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공기가 맑으니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과 산책하는 이들이 몇몇 보인다. 연못 주위로는 노랑붓꽃이 막 피기 시작해서 지난겨울에 왔을 때보다 훨씬 푸릇푸릇 아늑하고 보기가 좋았다. 연못에는 붕어인지 피라미인지 송사리같은 자잘한 물고기들이 평화롭게 유영을 하며 놀고 있다.

공원 안에는 밥할머니 석상과 다른 석상군들도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노랑붓곷과 연못
노랑붓곷과 연못

밥할머니의 석상은 고양의 잔다르크라는 이름으로 공원에 모셔져 있는데 그 유래가 이렇다.

북한산 밑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던 밥할머니,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쳐들어 오자 북한산 노적봉에 볏짚을 쌓아 두고 흐르는 물에 석회를 부려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군량미로 적군을 속였다. 적군의 사기를 땅에 떨어지게 한 지략이었다. 행주대첩에서는 여성 의병대를 조직하여 권율 장군을 도와 밥을 짓고 부상자를 돌보았는데 무기가 덜어지자 여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라 무기로 써서 대승을 거두게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여자들이 돌을 날랐던 부엌 치마를 행주치마라고 부르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이 여성 의병장을 나중에 밥할머니라 부르게 되었고 숭고한 뜻을 기려 북한산이 잘 보이는 동산동 창릉 모퉁이에 비석과 동상을 세웠답니다. 라는 설명을 새겨 넣은 표지석이 한 옆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밥할머니의 석상에 관한 것은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밥할머니 석상은 머리 부분이 소실된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조금은 안타깝다. 석상은 현재 얼굴 부분이 소실된 상태이다. 석상의 팔목과 어깨 등은 매우 풍만하여 전체적으로 얇은 곡선들이 몸을 휘감은 듯 보인다. 수인의 경우 왼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오른손은 약함을 받치고 있다. 입상으로 추정되는데 무릎 아래 부분이 결손 되어 정확한 원형은 알 수 없다. 석상의 뒷면은 비교적 평평하게 다듬어져 있는데. 따로 광배를 만들어 받쳤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조 중기 약사 보살상의 모습으로 세워진 여성 의병장 밥할머니 석상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 보았을 때 대단한 배려 속에서 유지되었다. 중국의 사신들과 고위관리들이 지나는 의주길(관서대로)에 세워진 밥할머니의 위상은 매우 컸다. 그러나 나라를 일제에 강점당한 후 밥 할머니의 목 부분이 훼손되어 얼굴과 머리 부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이 머리 부분을 새로 만들어 드리면 자꾸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옛 모습 그대로 있어야 민속, 문화적 가치가 높아 지금 모습 그대로 모시고 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과 후손들로 이루어진 밥할머니 보존회에서 매년 가을에 제향을 모시고 있다"

산책 나온 시민들
산책 나온 시민들

아녀자이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전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병사들에게 중요한 밥을 지어 기력을 회복하게 하고 부상자를 치료하는 마치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보인 여인 의병장은 오늘날 우리의 여성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라를 위하여 한 몸 바치고 재산을 아낌없이 내어 밥을 지어 공양했던 여인을 석상으로 만들어 그 뜻을 후손에게 길이 남기고자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전쟁이 끝난 후 선조대왕은 밥할머니의 공적을 인정하여 정경부인에 봉하였다고 하니 훌륭한 여인임은 분명하다.
유서 깊은 마을에 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마을 근처에 서삼릉, 서오릉이 있어서 가끔 서삼릉에 다녀오기도 하는데 서삼릉은 즐기는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서오릉에도 한 번 가 볼 생각이다. 고등학교 시절 봄 소풍 때 다녀온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점심시간 후 오락 시간에 다소곳이 기타를 치던 같은 반 친구가 떠오른다. 양갈래로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그 친구도 나처럼 서오릉을 추억할까?

오늘은 밥할머니 공원에 대해 알아보았으니 곧 서오릉으로 발길을 돌려 보아야겠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