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7.꽃 따라가다 길을 잃었다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7.꽃 따라가다 길을 잃었다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4.0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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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그치는 것을 기다려 오후에 집을 나섰다.

비가 머금은 길은 안온한 느낌으로 걷기 좋다. 평소 낮은 산으로 걷던 길과는 다른 서삼릉길로 접어든다. 약수터 길로 가려는 나를 붙잡는 이 있어 돌아보니 활짝 핀 매실나무 꽃이 카페 건물 뒤쪽에서 말간 얼굴로 바라본다.

꽃에 이끌려 갈 수 있는 길이 있나 살펴보다 낮은 돌담 사이로 발자국 난 길이 보여 살며시 올라섰다. 꽃을 보자 마음은 이미 가려했던  길을 벗어나 꽃나무를 향한다.

만개한 매실나무 꽃 사진을 찰칵! 찰칵! 저쪽에서 노란 웃음 방울방울 머금고 손짓하는 이 있어 다가가니 생강나무가 반긴다. 귀한 생강나무 꽃을 보니 이쪽으로 오길 잘했다면서 가까이 다가가려 하니 길이 없다.  

멀리서 발걸음 옮겨 줌으로 당겨 생강나무 꽃님도 찰칵! 하고 나니 산 저 쪽에  봄비 머금어 촉촉해진 얼굴로 바라보는 진달래 여럿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런데 길이 없네. 이 쪽을 보아도 마음대로 뻗은 나뭇가지들이 버티고 서 있어 가로막혔고, 저쪽을 보아도 가시덤불, 아 어쩌나. 가시덤불보다는 나무 가지를 치워 가며 가는 길이 편하겠다. 가로막은 나뭇가지 걷어가며 허리 숙여 길을 내어 걸어간다.

진달래에게로 다가간다.

앞산의 저 진달래 하염없이 서 있어요.

아무도 없는 산중에 다소곳이 누구를 기다리나.

외로운 길손 하나 길을 잃고 헤맵니다.

분홍 꼬까옷 차려 입고 누굴 마중 나오셨나.

바라만 보들 말고 어서 길을 알려 주세요.

그래도 함께 하고픈 속마음 아실 거예요.

찾아 주는 이 없어도 분홍빛 웃음 물고

환한 빛으로 산중을 밝히는 고운 님

이리 보아도 예뻐요

저리 보아도 예쁜 진달래여요.

길을 잃고 헤매다가 초록빛 잎사귀 쫒아 푹신한 낙엽더미 살살 밟아가며 나무 앞에 섰다.

마음껏 봄비 마신 나무들, 여린 잎 초록빛의 정령들이 힘껏 날개를 펴고 있네요.

이리 둘레 저리 둘레 방향을 가늠하다 뻗은 나뭇가지 피해 가며 오락가락, 드디어 오솔길을 찾았다.

우리의 삶도 예기치 못한 시련에 길을 잃을 때가 있다. 누군가 손을 잡아 이끌어 주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지만 무턱대고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일. 개척하고 찾으며 내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혼자서 묵묵히 나아가야 하는 길이 더 많다. 선지자들이 걸어 간 길 따라간다 한들 그것 또한

쉽지 않은 것이 분명한 일이지만 노력하며 나아간다. 인생살이 가다 보면 좋은 일 궂은일 함께 있어

울기도 웃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가 거쳐야 할 삶이 아니겠는가?

'선한 끝은 있다'는 옛말이 있듯이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 나가다 보면 밝은 빛은 우리에게 손짓하게 마련 일 것이다.

잠시 잠깐 꽃 따라가다 길을 잃어 당황도 했지만 다시 길을 찾는 것처럼 코로나 19 같은 암흑의 터널만 있는 것도 아님을 깨닫는다. 삶은 언제나 내 편에서 웃을 것임을 안다.

귀한 남산제비꽃 사진도 남겼으니 길을 잃고 헤매어 볼만도 할만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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