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2.빈대떡 사위(?)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2.빈대떡 사위(?)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2.10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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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좋아하는 빈대떡
냠냠 맛있게~
냠냠 맛있게~

벌서 봄을 재촉하는 비인가?
바람도 없이 차분하게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는데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하던 노래가 불현듯 떠 오른다.
어렸을 때야 몰랐지만 나중에는 소주, 막걸리보다 비싼 게 녹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 시절 샐러리맨들의 퇴근 후에 한 잔 , 속상해서 한잔, 즐거워서 한잔하며 마시는 술을 돈이 없으니 그냥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는 말은 빈대떡 주재료인 녹두가 비싸기에 어불성설이라는 얘기가 뜨겁기도 했다.

막내딸이 그리스에서 돌아왔을 때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을 리스트로 작성한 적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토종 한국인의 입맛이기도 했다. 어른들이 즐겨 드시는 생선 매운탕도 잘 먹었기에 작성된 리스트에는 아마도 그리스에서 대하기 어려웠던 된장찌개를 비롯해 육개장, 곰탕, 비빔밥, 잡채, 닭볶음탕과 빈대떡이었다. 하얀 쌀밥과 김치가 먹고 싶어서 한인교회를 찾아갔었다는 딸의 얘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저며 오던지. 그리스로 한 번 만나러 갈 때에 먹고 싶은 우리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재료들을 바리바리 챙겨갔던 옛날이 갑자기 생각났다.

막내는 엄마가 만든 빈대떡을 제 남편에게 먹여주고 싶다면서 재료는 무엇 무엇이 들어 가느냐고 물어본다. 우선 녹두부터 있어야 하고 숙주, 돼지고기가 들어간다고 얘기해주고 돼지고기는 비계가 있는 오겹이나 삼겹으로 준비하면 된다고 말해 준다.
 막내는 제 남편 핑계를 대고는 있지만 아마도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들이 생각이 많이 나는지 밥을 먹을 때나,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눌 때 반 아이들과 비교 대상이었던 도시락의 추억에서부터 특별했던 음식들을 얘기하는 것이 혹시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난 얼마든지 신나고 즐겁게 만들 어 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엄마다.

막내가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나와 오래 떨어져 살아서인 것 같다.
5년 만에 그리스에서 돌아온 뒤에 잠깐 있다가 서울의 직장에 근무를 하게 되어 다시 헤어졌다. 그리고 결혼을 했으니 제 언니들과 달리 나와 함께 할 시간이 별로 많지 않았다.
가끔 막내는 엄마의 음식이 생각나서 만들어 보았지만 매번 실패했다는 말과 제일 먹고 싶은 녹두빈대떡은 아예 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면서 어렵지 않냐고 물어본다. 막내는 뭐든 엄마가 힘들까 봐 참는 게 너무 많아 보여서 음식 만들기는 엄마의 즐거움이자 행복이니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한다. 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랜만에 딸과 있으니 내가 먹여 주고 싶고, 애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을 만들어 퇴근하는 딸 부부에게
"짜잔!" 하며 식탁에 차려 놓는다. 그러면 딸은 사진 찍기에 바쁘다.

그동안은 시장 봐서 반찬을 만들어 상해서 버리는 게 더 많았고, 배달 반찬도 먹어 봤지만 입맛에 맛지 않았고, 때 맞춰 만들어 먹는다는 것이 직장 생활하면서 상당한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다행히 사위가 인터넷 검색으로 레시피를 찾아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단다. 전업 주부들도 삼시 세끼를 차려 내는 일은 쉽지 않은데 하물며 일을 하면서 어떻게 잘해 먹을 수 있겠는가?
장모가 도와주기 시작하자 사위는  "이러다 습관 되면 안 되는데요." 한다

팬에 굽고 있는빈대떡
팬에 굽고 있는빈대떡

우리 집 빈대떡은 돼지비계를 달군 웍에서 기름을 빼서 그 기름으로 프라이팬에 간 녹두에, 익은 김치 쫑쫑 썰어, 돼지고기와 생숙주를 넣은 뒤에 반죽을 만들어 한 국자씩 떠 넣어 굽는다. 생숙주는 식감이 좋아 반드시 넣는다. 돼지기름은 일반 식용유보다 고소하고 감칠맛이 느껴져서인지 가족들이 좋아한다. 기름을 다 빼고 난  돼지비계도 빈대떡과 접시에 담아 주는데 그 맛이 또한 일품이라고 잘 먹는다. 바삭거리는 과자처럼 고소함 때문인지 사위는

"이런 거 처음 먹어 봐요, 맛있어요, " 하며 사위를 위해 마련해 놓은 맥주까지 들이키며 만족해한다.

전날 저녁부터 불려 놓은 녹두를 거피 내느라 물을 새로 받아 가며 헹구고, 돌을 고르느라 일어 내는 것을 보던 딸은 저가 할 일은 없냐고 한다. 그럼 엄마가 다른 것 손질할 동안 녹두를 믹서기에 갈아달라고 맡겼다.

"엄마 ,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것인 줄 몰랐어요. 앞으로 빈대떡은 아웃이야. 안 해 먹을래." 한다.
"어떤 음식이든 손이 많이 가고 정성이 깃들어야 맛이 나는 거야. 별로 힘든 일 아니니 염려 마."

비계에서 기름 빼서 얼른 한 장 구워 맛보라고 하니

"아. 엄마가 해주는 요리는 지구가 공전하는 거랑 같아. 엄마. 당연한 거야. 맛있어."
"오빠, 어때? 오빠도 맛있지?" 아마 맛없다고 했다가는 몇 년 동안은 바가지를 긁힐 것 같다.
                                      
며칠 전  막내의 절친 ㅇㅇ이가 놀러 오는데
"엄마, 엄마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ㅇㅇ이가 엄마  힘드시면 안 된다며 배달시켜 먹는다고 했어요." 한다.
" 으응? 알았어."
내가 말은 알았다고 하지만 늘 뭔가 해주는 착한 엄마 증후군 중증이라서 며칠 동안 다짐을 한다. 착한 엄마 증후군인 내가 그냥 있을 사람이 아닌 것은 분명한 일, 이번에는 혼자 오니까 간단하게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해서 지난번에 남은 녹두를 담가 놓는다.
점심을 준비하면서 녹두를 물에 헹구고 있으니
"엄마, 뭐 하시려고?"
"그래도 엄마가 있는데 어떻게 배달 음식을 먹냐? 말이 그렇지.ㅇㅇ이 빈대떡 좋아하겠지? 엊저녁에 담갔어. 이거 해주려고."
"엄마 힘든데.... 내가 뭐 만들어도 되는데..." 딸은 미안해하면서도 얼굴에 살며시 떠오르는 미소를 보니 엄마 마음은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

딸은 1인 창업을 해서 운영한 지가 3년 차 되는 해이다. 처음 직장에서 몇 해는 러시아에 우리나라 중고 버스를  팔았고, 자동차 부품 해외 영업을 오래 한 경력으로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무역을 하고 있다. 일을 하고 돌아오거나 재택근무 때는 해외 바이어와 화상 미팅도 가끔 하는데 주방에서 식사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딸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쉬는 주말에도, 그동안 설거지며 밥 안치는 일을 사위가 하던 것을 전부 내가 선수 쳐서 해버린다. 내가 움직이고 있으면 사위가 나와서
"어머니 제가 해도 되는데요."
"아, 내 손이 놀고 있어서~ㅎㅎ"하면 씩 웃으며 들어간다.

막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는데
"엄마, 여자가 돈 벌어 오고 남자가 집안일하면 어때요?"하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래? 그것도 괜찮아." 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세상이 변화되어 가는 속도는 빨랐고 거기에 대처하는 우리들이 버거울 정도였기 때문에 사고思考의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마침 사위는 웹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집에서 살림을 맡아서 했다. 차분하고 자상하다. 젊은 애들은 우리 때와 달리 참으로 합리적으로 사는 것 같아 보기가 좋다. 남편의 말대로, 시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아왔던 나는 딸이 사위랑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지혜롭고 스마트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대견해 보인다. 나 자신 그렇게 살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것을 애들을 보며 반성할 때가 많다.

막내가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일 년에 절반쯤은 해외로 나가 일을 했기 때문에 사위는 캐리어에 짐을 싸는 일부터 세심하게 도와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되기 전에 러시아랑 라스베이거스에 둘이 다녀왔는데 사위가 힘들어서 앞으로는 안 나갈 거란다. 막내가 비행기를 오래 타는 일, 전시회 부스에서 바이어 상담하는 일등을 곁에서 지켜보고는 자신은 집에서 하는 일이 체질에 맞다면서 대단하다고 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때와는 정말 다르게 할 말 다하고 행동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며  살아간다.  막내랑은 엄마인 나랑 가장 많은 세대차 난다. 그래서인지 막내에게 배우는 것도 훨씬 많다. 나름 엄마를 젊게 봐주며 항상 용기를 북돋워주는 막내가 고맙다. 노트북으로 브런치를 할 때 잘 모르는 것은 곁에 있는 막내에게 sos를 청해 해결하기도 한다.

딸 친구인 ㅇㅇ이는 빈대떡이 맛있다며 먹는 동안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뜨거울 때 먹어야 맛난 거라고 주방에 서서 계속 구워 식탁으로 옮겨줬다.  

빈대떡의 유래를 알고 싶어 백과사전에 찾아보니 재료인 녹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싸고 귀했던 모양이다.  귀한 녹두로 만든 음식을 손님 대접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 내놨던 손님 접대용 음식이란 뜻에서 빈대賓待떡이라 불렀다는 말도 있고, 흉년이 들어 곤궁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칠 때 서울의 부자들이 큼지막하고 둥글넓적한 떡을 만들어  빈자貧者들에게 나누어 줬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마트에는 중국산 녹두도 있어서 국내산을 확인하고 사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그날도 우리 집 특별 음식 중의 하나인 빈대떡은 말 그대로 귀한 자식, 귀한 손님에게 대접했고, 모두의 입을 즐겁게 해 주었으니 이보다 좋은 빈대(賓待)떡은 없는 것 같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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