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0.봄나들이와 통영, 그리고 편백나무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0.봄나들이와 통영, 그리고 편백나무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4.15 18: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먼 길을 달려와 꽃잔치에 참여했던 몸은 오랜만에 달게 잠을 자는 원동력으로 어슴푸레한 창밖의 기운으로 눈이 떠졌다.

모두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아침을 연다.

늘 그래 왔듯이 향숙님의 몸풀기 가르침을 받으며 몸동작을 따라 한다. 머리 돌리기부터 바른 어깨 동작하기. 허리 펴기. 허벅지 근육 살리기. 발가락도 펴주며 돌려줘야 굳지 않는다며 친절히 설명을 붙인다. 나이 들수록 소근육을 만들어줘야 허리가 굽어지지 않는다며 코어 운동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면 우린 따라 하며 "아~ 시원 타. 시원 타" 하며 굳어진 몸을 풀기에 바쁘다.

막내딸이 리조트에 묵는다고 하니 아침에 먹을 빵과 샐러드용의 야채를 준비해준 덕분에 푸짐한 한상 차림을 해서 먹으니 막내 정아님이 " 그 어느 브런치 카페에서 먹는 브런치에 견줄 수 없는 샐러드"라고 말을 하니 모두 끄덕끄덕 흐뭇하게 먹는다.

봄 선물 스카프를 각자 개성에 맞게 골라 하나씩 목에 두르고

"햇살이 따가울 때 딱 좋아. 전에 만들어 준 것 가져왔는데 또 해왔어?"

"바쁜데 언제 만들었어. 봄에 딱 좋아 이쁘다~^^"

둘째 날 꽃무늬 스카프를 봄바람에 살랑이며 통영으로 향한다. 이른 점심을  지리적 위치와 풍부한 해산물의 고장답게 전복 해물 뚝배기 정식을 먹는다. 통영 굴전과 굴무침이 입맛을 사로잡는다.  부드러운 고등어구이와 조개류가 듬뿍 들어간 따끈따끈한  전복 해물탕에 할 말을 잃고 부딪치는 숟가락 소리만 요란하다.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으로 입가심을 한 후 맨발의 체험장으로 출발한다. 편백나무 숲인 나폴리 농원으로 가서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기로 향숙님이 설계해 놓은 것이다.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조그만 항구도시 통영. 박경리 선생과 같은 많은 예술인들을 낳은 도시는 포근하며 정감 있게 낯선 손님들을 끌어안아 준다. 나지막한 건물부터 눈 안에 들어와 안정감을 준다. 바닷가 한 옆의 새로 들어선 높은 호텔을 제외하면 포구 마을마다 아기자기한 지붕들이 맞닿아 소곤대는  듯이 귀엽게 보인다.

편백나무 숲 농원에 이르니 그리운 홑겹 동백이 반가운 미소로 반겨준다. 부산에서는 어느 해부턴가 개량종인  겹동백이 많아져서 단아한 홑 동백이 귀해졌다.

역시 남쪽으로 오니 동백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예전에 서울에서 동백나무를  양재 꽃시장에서 한그루 구해서 키우려 애를 썼지만 기온이 맞지 않아서 실패를 했다. 이후론 서울에서는 동백을 키울 생각을 접었다.

청목과 동백, 편백이 마냥 숨 쉬는 나폴리 농원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숨이 편안해지는 것 같다.

편백나무 향 스프레이로 먼저 우리 몸을 샤워시킨 후에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입장을 한다. 영상으로 이용 안내를 숙지한 후에 편백나무 톱밥 길을 걷게 되었다. 숲 속의 기온은 차갑게 느껴져 몇 걸음 걸으니 발이 시리다. 발이 시려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뛰다시피 빠르게 움직여진다. 느긋하게 숨을 쉬고 주변 숲을 돌아보며 피톤치드 속에서  쉼을 해야 하는데 내 몸은 무엇에 쫓기 듯해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반성하며 천천히 걸어 본다.

그동안  바쁘다는 생각으로 내 몸을 쉬어 줄줄 몰랐다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느껴져 반성한다. 곳곳에 동백이 눈을 맞춰주니 미소가 절로 피어나고 " 쯔삣 쯔삣 쭈후~"" 하는 새소리를 따라 흉내 내며 이곳에서 내걸어 놓은  표지판의 "호흡을 길게 천천히"를 따라 해 본다. 언제부턴지 우리의 몸은 아니,  나의 몸은 빨리빨리 와 조급함에 길들여져 느림을 모르게 되었나 보다.

편백의 피라미드 안에서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다. 편백의 공기 부스에 들어가 몸을 적신다.  편백의 마당에서 자리를 깔고 하늘을 바라보다 둥둥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꿈을 꾸어본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면 천천히 살아갈 것을, 조급한 마음을 먹지 않고 생활할 것을, 주변을 돌아보며 형편에 맞는 나눔의 계획도 세워 본다.

좁다란 편백나무 길을 걸으며  맑고 시원함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리에게 이러한 것을 누릴 수 있도록 일정을 짠 향숙님에게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만나기 전에 폭풍 검색을 해서 어디를 가서 무엇을 보고 느끼며 즐길 것인가,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해서 음식점을 예약하는 부지런한 열정으로 모처럼 시간을 내어 만나는 모임을 절대로  허투루 보내지 않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열정은 남편과 함께 미리 답사까지 한다는 것에 존경심마저 드는 것이다. 향숙님의 이런 배려심이 없다면 짜임새 있는 여행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맏언니의  " 어떤 여행 패키지도 이렇게는 못한다"라는 한 말씀으로 대변해준다.

해먹에 누워 편안함에 살며시 흔들흔들 , 편백의 방에서 느리게 쉬어본다.

마지막으로 족욕의 방에서 물통에 따듯한 물을 받아 한 방울 떨어트려주는  편백 오일의 향기를 맡으며 피로를 풀어 준다.

온몸의 긴장감이 사르르르 풀린다.  시원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모자란다.

하늘을 날 듯이 몸이 가벼워진다.

무거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내 버린 듯 마음도 가볍다.

그래서 일 년이 행복하려면 여행을 하라고 하는가 보다.

봄 나들이의 이틀째 예약된 이별의 시간이 다가온다. 

다음에 다시 만나 머리를 식힐 수 있는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마지막 이벤트로 향했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