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3.겨울과 눈, 그리고 장독대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3.겨울과 눈, 그리고 장독대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2.1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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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즐거워~

뽁! 뽁!
뽀득! 뽀득!
뽀드득! 뽀드득!

넘어지지 않으려고 발길 닿지 않은 눈길을 힘주어 걷는다.
오늘따라 유난히 눈길이 대꾸한다.

'뽁뽁'거리 거나 '뽀드득'으로.
왜 이제 나왔느냐는 듯이.
맞아 어젯밤 눈 내릴 때 나오고 싶었어.
내리는 눈 보고 싶고 맞아도 보고 싶었어. 하나 몸이 여의치 않은걸? 이제 겨우 감기 잡았는걸.
계속 영하의 날씨에 몸은 움츠러들고 한 달 내내 감기에 시달리니 눈 내린다고 한 밤에 나가서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절친은 카톡으로 계속 눈 노래, 동요를 들어 보라고 눈 동요를 보내며 '강아지랑 안 나가냐?'(호야가 하늘의 별이 된 지 한 참되었는데도 잊고 있는 모양이다. 암말 하기 싫었다.)고 보챘다.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한 겨울에 밀짚모자 꼬마 눈사람 눈썹이 우습구나 꼬마 눈사람~"
"펄펄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동요를 흥얼거려 보니 안개가 낀 듯 답답했던 가슴속이 순결하게 정화되는 느낌이다.

"하얀 눈 위에 구두 발자국 바둑이와 같이 간 구두 발자국
 누가누가 새벽길 떠나갔나. 외로운 산길에 구두 발자국"

동요에서처럼 바둑이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인 곁에서 귀여운 발자국을 내며 걸어간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신나게 뛰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호야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달리는 것을 좋아했었지.

온 세상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아파트 단지 안은 혹여라도 안전사고가 날까 봐 눈 내리던 밤부터 송풍기를 돌려 길은 걸을만했다. 눈길에 넘어질까 봐 조심조심 발걸음에 힘을 꽉꽉 주며 걸어본다. 나이가 들어 균형 감각을 잃은 것인지, 몸이 둔해졌는지 겨울뿐만 아니라 방심하면 떨어지고 넘어졌던 전력이 있는지라 이젠 한걸음 한걸음 발짝을 뗄 때마다 신경을 쓴다. 딸들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한다.

동네 아이들은 하천 둑에 눈썰매를 타며 놀고 있었다. 눈이 제법 쌓인 비탈진 곳에는 어김없이 플라스틱 눈썰매를 들고 나와 둑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썰매를 끌고 올라와서는 다시 내려가기를 빨개진 얼굴로 웃음을 날리며 반복하며 즐거워했다. 스키장도 눈썰매장도 갈 수 없는 코로나 블루 시대에 아이들은 저들끼리 놀 수 있는 방법으로 놀이를 하는구나. 조금이라도 비탈진 길에는 두세 명씩 짝을 지어 눈썰매 타기가 한창이다. 산책길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노는 것을 내려다보며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번져 온다.                                 

어렸을 때엔 아침에 눈을 떠 눈이 내린 날엔 맨 처음 나가 마당에 발자국 꽃을 찍어내는 놀이를 했다.

발을 꾹꾹 눌러 꽃잎 5장, 6장을 만들어 꽃송이를 만드는 것은 새하얀 도화지 위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신나는 일이었다. 마당도 길거리도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도화지에 두 손을 호호 불어 대며 눈 위에 살그머니 대고 어떤 그림을 그릴까? 고민도 잠시. 동생들이 나와 눈을 뭉쳐 눈싸움도 하고, 함께 아기 눈사람 만들어 솜이불 쓰고 있는 장독대 항아리마다 얹어 놓으며 좋아라 했던 다시 못 올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겨울은 역시 썰매의 계절이다.
마을의 넓은 논이나 개울에는 얼음이 꽝꽝 얼어 얼음 지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는데, 동네 남자아이들은  씽씽 달리며 썰매를 타고 올망졸망 어린 동생들은 썰매 꽁무니에 매달려 뛰느라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던 겨울 한낮의 풍경. 나무 꼬챙이로 얼음을 지치며 그저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도 즐겁기만 한 어린 시절, 하, 하, 호, 호, 까르륵 웃음소리가 마을 어귀까지 퍼져나가던 그 시절은 모두의 가슴속에 살아있을 것 같다.
   
걷다 보니 다리 밑에서 아이들에게 썰매를 태워 주는 어른들이 눈에 띄었다. 썰매 생김새를 보니 우리 어린 시절의 투박하고 튼튼해 보이던 썰매라기보다 매끄럽고 날렵한 모양이다. 썰매에 아이를 앉히며 자세를 교정해 주는 모습을 보니 그 옛날 아버지께서 남동생에게 썰매를 만들어 썰매장이 된 논에 데리고 가셔서 썰매 타는 방법을 일러 주시던 그때가 떠올랐다.

눈이 자주 내려서, 얼음이 얼어서 아이들은 즐겁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포근하게 덮인 세상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이 든 어른들도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 같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장 직장으로 출퇴근길에 도로가 막힐 것이, 자동차 운전이 걱정스럽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은 어김없이 티브이에서는 어느 지역에  폭설이 내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양식장 물고기가 폐사했다는 장면이 나온다. 고속도로에서는 몇 중 추돌이 일어났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전해 준다.

그냥 사람들이 좋아하는 하얀 눈의  동화적인 모습으로 변한 그것만으로 좋은 세상 일순 없을까?

하지만 나조차도 푹 쌓인 눈길을 걸으며 미끄러워 넘어질까 봐 사고에 대한 두려움으로 긴장한 몸이 뻣뻣해 옴을 느끼는 현실이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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