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1.흑백 사진이 갖는 젊은 초상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11.흑백 사진이 갖는 젊은 초상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4.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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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마지막을 위해 새로운 이벤트는 흑백 사진 찍기. 

첫날 노을 지기를 기다리며 흑백으로 사진 한 장 남기자는 의견에 따라 통영 시내에 흑백사진 촬영하는 데를 검색해서 나폴리 농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예약을 했었다.(당연 향숙님이 전화로)

기념사진을 흑백사진으로 남기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흑백사진이 멋진 향숙님의 카톡 프사는 제주도 여행 시에 남편과 찍은 흑백사진이라고 한다. 키가 모델 수준급으로 늘씬한 향숙님은 어떤 포즈로 사진을 찍어도 우리가 보기엔 작품이다. 우린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그런 멋진 사진이 나오리라 기대도 하지 않으면서 개인 사진 찍는 것은 망설였다.

이번 봄 나들이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흑백사진.

먼저 쑥스러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핸드폰을 들고 다니기에 가끔 셀카도 찍어보고 하지만 정식으로 사진관에서 사진 촬영하는 일은 아이들 어렸을 때 찍은 가족사진 이후로는 없는 것 같았다. 그만큼 사진이 흔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고 싶은 사진을 먼저 찍고 개인 사진도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는데 망설여졌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날 이래"라고 말하는 향숙님의 한마디.

아직 예순이 되려면 1년이 남은 막내 정아도 사진 찍는 것은 싫다고 한다. 나도 덩달아 늙은 모습을 맞닥뜨려야 하는 일이 불편해서 안 찍겠다고 했다. 맏언니는 칠십 중반이니 더더욱 도리질을 쳤다.

딸들이야 엄마 바보라서 맨날 예쁘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내 얼굴이 어떻게 바뀔지 늘  염려가 됐다. 링컨의 말처럼 사람은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을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만큼 마음을 잘 쓰고 행동을 잘해야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다.

표정이 안온하게 풍기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사진에 내 표정이 어떻게 나올까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다.

일단은 넷이서 촬영 작가가 주문하는 포즈 몇 가지를 말 잘 듣는 어린이처럼 따라 했다. 웃으라니 웃고, 귀여운 표정을 지어 보라 하니 어색한 듯 어째야지? 하면서도 나름 손가락 브이자도 그어 보면서 끝이 났다.

우리의 기념사진 촬영이 끝나고 향숙님의 일인 촬영을 하는 걸 보니 정아와 나의 마음은 살짝 변화의 기류를 탄다. 까짓 거 나이 먹었음 먹었지 두려울게 뭐 있겠냐는 마음이 든 것이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정식으로 사진을 찍어 보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쑥스러움을 물리치고 촬영에 임했다. 촬영 작가의 주문대로 포즈를 취하다 보니 식은땀이 나는 것 같았다.

사진이 귀했던 어린 시절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는 소풍을 가서 전속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었다. 수학 여행지에서의 단체 사진도 함께 온 사진사가 찍어 줬고 친한 친구들하고도 사진 찍는 것을 부추겼고 우리들은 또 그렇게 했던 기억이 있다.

차츰 나이 들어가면서 아이들  성장 기록을 위해 매일 찍어 사진첩을 만들기는 했어도 어느덧 나 자신이 찍히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생활에 찌들어 표정도 밝지 못하거니와 늘어나는 주름살이 싫었던 탓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사진으로 보는 우리는 눈으로 실물을 볼 때와 많은 차이가 난다. 1년 전의 나와 현재의 내가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 사진으로 보면 훅 늙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간혹 사람들은 매년 자신의 변화를 보기 위해 기념으로 사진을 남겨 놓는다고 한다. 결혼사진 촬영도 해마다 하는 부부들이 있다고도 한다.  단골 미용실의 원장님도 매년 사진을 찍어 놓는다고 한다.

사진이 인화되어 나올 때까지 우리는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통영에 왔으니 충무 김밥을 먹어 보자면서 충무 김밥 집으로 향했다. 통영의 충무 김밥은 보통 김밥과 다르게 맨밥을 한 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로 김에 싸고, 어슷어슷 썰어 담은 무김치와 어묵과 데친 오징어를 양념하여 버무린 것이  시래깃국 하고 나온다. 충무 김밥은  바다낚시 떠나는 사람들에게 간편식으로 해주던 것이 통영의 명물이 되었다고 한다. 충무는 통영의 옛 이름이다.

드디어 사진이 나왔다.
나이 드니 풍성하던 머리칼은 간데없고 사진작가가 건네준 꽃다발이 어색해서 멋쩍게 서 있는 폼이 영 촌 할미 같다.

흑백사진이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차분하니 고즈넉하다.

개인 사진도 조그만 액자에 담긴 것이 그냥 봐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옆에서 괜찮다 하니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우린 1년 뒤에도 나들이 가서 그 지역의 사진관에서 흑백의 기념사진을 찍기로 하고 통영을 떠났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흑백사진은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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