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9.글벗들과 함께 한 벚꽃 여행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9.글벗들과 함께 한 벚꽃 여행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4.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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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첫 기차를 타고 부산에 닿았다.

지하철을 바로 환승해서 구서동으로 향하는데 마음이 지하철보다 빠르게 달린다.

기다리던 글 벗님들과 합류해서 바로 진해로 직행한다. 구서동에서 새로 뚫린 산성터널을 통과해 낙동대교를 건너면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을 바라보니 반가움에 저절로 "낙동강이다!"라고 소리친다

부산엔 이미 곳곳에 벚나무들이 환하게 웃으며 서울 손님을 반가이 맞아준다. 김해와 장유를 지나면서 진해에 이르는 길에는 미세 먼지로 인해 뿌연 하늘 밑이지만 봄을 맞는 산허리엔 벚나무들의 몽글몽글한 자태가 어우러져 봄빛의 서막을 장식하고 있다.

사실 진해와 가까운 부산에 살았지만 진해 벚꽃 이야기는 티브이 뉴스로만 전해 들었었다. 벚꽃을 구경하러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하나?

시어른들을 모시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며 사는 생활은 마음의 여유를 누리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혼자서는 어디를 간다고 나설 수 있는 용기도 없던 시절을 살았다.

나 자신은 없고 가족만 있었다고 해야 할까? 눈치가 보여 독자적인 일을 할 수가 없던 누구 집의 며느리, 누구의 아내와 세 아이들의 엄마로  충실해야 했던 삶은 마음 놓고 꽃구경 한번 제대로 간 적이 없었다.

남들이 흔히 할 수 있었던 봄 나들이도 쉽지 않았던 세월이 지금 이 순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꽃들이 뭉텅이로 내 가슴에 달려든다. 숨이 가쁘다. 좋다. 이쁘다는 말 외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글벗들이 초대해준 귀한 시간이 감격스러워 그저 웃고 말없이 걷는 가운데 지난했던 세월들이 이제 마음 한편에서 사그라들어 재가 되어 훌훌 날아간다.

벚꽃을 여한 없이 바라보며 여좌천 옆의 생태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겨 연못 주의를 한 바퀴 돌며 주의를 살핀다. 휘휘 늘어진 버드나무가 반갑고 조릿대 숲이 촘촘하여 눈이 시원하다. 조팝나무는 제멋대로 가지를 뻣어 층층이 매달고 있는 하얀 꽃들은 벌 나비를 부른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푸르거나 하얀 꽃들에 눈이 시원하다. 그동안 복잡 다난했던 일상들이 잠시 물러나고 온전히 봄을 만끽하기에 여념 없는 시간이 좋다.

 

시인 향숙님의 빈틈없는 여행 일정에는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우리들을 위해 보타닉 뮤지엄에서 보는 야생화와 진해의 드림로드라고 불리는 안민고개를 드라이브하는 것까지 포함돼 있었다. 안민고개는 걸었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자동차로 지나가면서 고개를 양쪽으로 도리도리 하며 구경을 하면 좋을 정도로 경치가 근사하다.

오른쪽은 고목의 벚나무에서 뿜 뿜 풍기는 탐스런 벚꽃 더미와 진해 시가지가 다 내려다 보이고 왼쪽엔 울창한 숲 사이로 키 큰 진달래꽃 무리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보타닉 뮤지엄에서 본 꽃들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운데 안민고갯길에서 맞닥뜨린 우람한 고목의 벚나무에 경이를 느끼고서 해넘이를 보러 행암마을로 향한다.

행암마을은 지금은 운행되지 않는 철길이 바다와 자동차 도로 사이에 있어 사람들이 선로 위에 서서 걷기도 하며 노을 구경을 하는 명소로 알려진 곳이라 한다.

바다에는 검은 물닭 두 마리가 여유롭게 떠다니며 물장구를 친다. 그곳에도 노을 바라보기 좋은 장소로 나무데크길을 길게 만들어 놓아 마치 바다 위를 걷는듯한 기분이 되어 바다로 나아가 정자까지 다다른다.

정자에 앉아 일몰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 카페에서 쉬기로 한다.

따끈따끈한 대추차를 대접만 한 유리잔에 가득 담아주는 후한 인심에 가격 또한 저렴한데 놀라며 우린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모두들 인생의 후반기에서 이런 사소한 일에도 즐겁고 감사한 마음에 몸마저 따듯해진다.

해넘이를 바라본 후 숙소인 마산의 아드리아 리조트로 향했다. 그곳 또한 바다 곁에 있어서 바다의 풍광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곳이다.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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