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29.황포 돛대 노래비를 찾아 나섰다.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29.황포 돛대 노래비를 찾아 나섰다.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7.1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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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띈다.

<황포 돛대 노래비> <웅천 안골왜성>. 왜성은 다녀왔으니 황포돛대 노래비를 찾아 나서 볼까?

5.5km면 걸을만하다고 생각해서 5시 40분에 길을 나선다.

가리키는 방향이 바닷가 쪽이 아닌 용원 국민체육센터 방향이라서 그냥 걸었다. 시작은 좋았다.

가다 보니 고속도로 같은 대로가 나타나서 당황스럽다. 진해와 부산으로 나가는 큰길이 나타나서 길가에 세워 놓은 자전거도로 표지판을 들여다보았다.

이정표
*이정표
자전거 도로 이정표
*자전거 도로 이정표

여기에 나타난 지도와 카카오 맵 지도를 비교하니 흰돌 메 공원 쪽으로 가야 황포돛대 노래비가 있는 것이 확인이 된다. 대로엔 자동차들만 씽씽 달리고 걷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다가 부산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면 되겠구나 생각한다.

며칠 전 흰돌 메 공원 가겠다고 마천공단 입구 주유소 삼거리까지 갔던 일이 생각났다. 길 따라 걷다 보니 그곳과 연결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고개 위 다리를 건너면서
*고개 위 다리를 건너면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길을 무작정 걸으면서 무모한 나를 탓해보지만, 시작을 했으니 어느 정도까지는 감내를 할 생각으로 계속 걸어 본다. 걷다 보니 더 이상 걷는 길이 나오지 않고 건너편으로 가는  다리가 나타난다. 건너서 길 아래로 내려간다. 걷고 걸어서 결국 마천 공단 입구 주유소 삼거리까지 다다랐다. 여기까지 3.1km를 걸었다.

카타오 맵은 노래비까지 2.4km 남았다며 택시를 추천한다. 편의점에 들려 생수  한 병을 사서 들이키고 되돌아온다. 이미 걸었던 길은 낯이 익어 수월하다. 주변을 둘러보며 감나무도 오이밭도 관찰하기에 이른다.

 

오이밭
*오이밭

집까지 오니 6.3km 정도 걸었다.

집에서 쉬면서 공단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흰돌 메 공원까지는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하율이를 준비시켜 유치원에 보내는 딸을 보며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서 딸과 사위가 좋아하는 잔멸치 볶음과 진미채 조림을 만들어 놓는다.

점심엔 엄마랑 오랜만에 아귀찜 먹어야겠다며 딸은 좋아한다. 하율이를 키우며 둘째와 함께 살 때 아귀찜을 자주 먹었다. 부산에서는 아귀찜 잘하는 집이 근처에 있어서 좋았다. 딸의 지인이 추천하는 집의 아귀찜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집을 나섰다.

*생각대로 걸은 길, 며칠 전에 갔던 공단 입구 삼거리.

마천공단 입구 마을인 위곡 마을까지 버스로는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안골마을에서 본 노래비 이정표는 삼거리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카카오 맵에 의지해서 공단길을 가로질러 하염없이 걷다가 바다 쪽으로 갔지만 길이 없다.

*길이 없다.
*길이 없다.

다시 돌아 나와 다른 방향의 길로 나가 앞으로 전진한다. 느낌으로 왼쪽, 왼쪽으로 걸어 나가며 귀한 겹 채송화와 능소화를 만나 사진을 찍는다. 사실 능소화는 많지만 옛 채송화는 귀하게 보이지 않고 사철채송화가 어느샌가 우리의 화단을 점령하고 있다.

요즘 보기 드문 겹채송화
*요즘 보기 옛날 채송화
반가운 이정표를 만났지만 노래비는 어디있나?
*반가운 이정표를 만났지만 노래비는 어디 있나?

바다가 보이는 도로까지 나가니 반가운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가 알고 보니 진해 영길만이라는 곳이다.

아! 이제 드디어 황포돛대 노래비를 만나는 것인가? 황포돛대는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노래이다. 부모님 세대에 유행했던 국민가수 이미자 님의 노래인데 이곳에 노래비가 있다니 궁금했다.(1967년에 나온 노래)

드디어 노래비를 만나는 것인가?

*바다는 조용했다.
*바다는 조용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노래비는 보이지 않고 바닷길만 끝없이 펼쳐져 있다.  아침에 6km 이상을 걷고 삼거리에서 여기까지 1km 이상 걸은 듯한데 카카오 맵의 표시는 더 걸어야 하는 것으로 나온다. 다리도 아프고 발도 욱신거린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고지가 가까운 것은 분명하다.

노래비를 검색하니 꽤 큰 조각이어서 눈에 띌 만도 한데 보이지 않으니 아직도 멀었나? 하며 걷는다.

걷다 보니 <화장실 있는 곳 500m>라는 표지판이 보여 반갑다. 500m가 이다지도  먼 길이었던가?

터벅터벅 걷는 발걸음이 무겁다.

바다는 말이 없고 조용하다. 다행히 햇볕도 없다. 걷기 좋은 날씨인데 무모한 마음을 만난 내 몸은 고생을 한껏 하고 있다.

*드디어 만난 노래비, 오른족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흘러 나온다.

터벅터벅 걷다가 만난 바다를 등지고 우뚝 서 있는 노래비가 보인다. 황포 돛대 가사는 작사가 이영길님이 경기도 연천 포부대에서 복무 할 때 어린시절의 영길만 바다를 그리워하며 지나가는 배에 슬픈 마음을 담아 황포돛대를 지었다고 한다. 작곡가 백영호님이 작곡을 하고 이미자님이 불러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흘러나온다.

여기서 집으로 돌아갈 것인가 흰돌 메 공원으로 갈 것인가. 한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지도에 나타난 공원은 5~600m만 더 걸으면 될 것 같은데 아침부터 너무 많이 걸어서 무리는 아닐런지...

안골포에서  이쪽을 보았을 때 흰 배 모양의 건물은 정말 배 모양 레스토랑인데 문을 닫았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라도 먹으며 쉬고 싶은 커피숍을 갈망했는데, 작은 음식점도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코로나의 여파인가 보다.

* 저 끝에 있을 흰돌메공원.

공원까지 가면 쉴만한 곳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시 걷는다. 이 집념으로 진작 뭔가를 했으면 아마도 큰 일을 해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공원 앞에 다다랐다.

안골포에서 이곳을 바라보며 꼭 가보리라 했던 것을 이뤘다.

*드디어 진해바다 70리길 7구간 시작점, 흰돌메공원입구.
*엘리베이터도 없으며 나선형 계단으로 올라가 육교를 건너야 함.

공원에 올라갈 엄두는 도저히 낼 수가 없을 정도로 나선형 계단을 오른 뒤에 다리를 건너 산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아찔하다.

휴게소가 있어서 아이스커피를 주문해서 한 모금 들이켰다.

맛이 어쩜 이렇게도 없을 수 있지? 살며시 탁자에 내려놓고 걸어 나온다. 잠깐 쉬었으니 다시 가보자.

버스 노선도 없고, 택시도 보이지 않으니 그냥 걸을 수 밖에 없다. 이제 아는 길이니 편안한 걸음걸이가 되어 주변을 살피니 못 보던 예쁜 꽃이 바닷바람에 흔들린다.

검색하니 '고삼 꽃'이란다.

콩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며 뿌리나 씨를 약재로 쓰는데, 소화기, 피부과, 안과, 신경계 질환을 다스리는데 쓰인다고 한다.

고삼꽃
*고삼꽃과 나비

 

*안골포를 바라보니 손녀 하율이네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안골포를 바라보니 손녀 하율이네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딸에게 노래비 사진을 톡으로 보냈더니 엄마를 높이 보아주는 딸이 있어 힘내서 걷는다. 오늘 14km를 걷고 마무리한다. 마음속에 숙제 같던 일을 다 하고 나니 개운한 마음이 되어 내일은 서울로 향할 것이다.

추억의 노래, 황포 돛대 악보를 실어 본다.

*photo by young.

*악보; daum.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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