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35.명동성당과 석촌호수 거위, 그리고 친구와 힐링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35.명동성당과 석촌호수 거위, 그리고 친구와 힐링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8.10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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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은 소리 소문 없이 밀려드는가 보다.

어제 하루의 일정은 부자재 구입하러 동대문 시장을 다녀와 우체국에 들려 택배를 보내고, 오후엔 예약된 정형외과를 다녀오는 일이다.

가끔 서울에 오는 부산에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영아, 고양에 있나? 나 아침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런데 윤정이네 집에 못 들어가고 밖에 있는데 너 나올 수 있나?" 한다. 할 일이 있어서 지금은 어렵고 몇 시간 지나야 시간이 된다고 말을 한다.

부산에 사는 친구는 서울 수서에 딸이 사는데 손주를 키웠었다. 코로나로 인해 딸이 하는 베이커리 수업이 쉬게 되어 부산에 내려가서 가끔 외손주를 보러 오는데, 올라오는 날 뜻하지 않은 소식에 불안한 마음과 집에 들어가지 못하니 낮 시간을 밖에서 배회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외손주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담임교사가 일요일에 동생과 만나 식사를 했는데  동생이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는 소식에 그 선생님도 검사를 해서 아기랑 온 가족이 검사를 마치고 대기 상태라는 것이다.

딸에게 주려고 만들어 온 밑반찬이며, 말린 생선, 남편이 잡아 온 붕어 달여 얼린 것 등 캐리어에 잔뜩 담아 갖고 온 것은 딸네 집 문 앞에 놓아두고, 대면도 못하고 전화 통화만 하고는 우리가 자주 만나던 강남 신세계로 가고 있으니 거기서 보자고 한다.

바쁘면 안 와도 된다고 말은 하지만 바쁜 일 마치고 나면 달려가 봐야 할 것 같은 상황이다.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워낙 쇼핑을 좋아하고 몇 시간 걷는 것은 일도 아닌 친구이기에 우선 구경하면서 시간 보내고 있어라. 급한 일 끝내고 나면 병원 갔다가 바로 가겠다고 말을 해 놓는다.

둘 다 당황스러워 처음엔 나도 바로 달려갈 것처럼 말을 하고 준비하다 보니 병원 예약이 생각났다. 점심도 먹어야지, 우체국 가야지, 시간 맞춰 병원 가야지.

친구 딸은 게스트하우스를 어느 쪽에 잡으면 엄마에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중구 명동에 필 스테이라는 곳에 방을 잡았다고 하면서 내게 안내 문자를 보내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지 3시에 입실이니 그 이후에 들어 가 있겠다면서 천천히 오라고 한다. 휴~ 나도 잠깐 상황정리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 부지런히 정류장으로 향했지만, 달걀 부리 마을에 있는 우체국 방향의 마을버스는 28분을 기다려야 한다. 걸어가면 20여분 거리를 서서 기다릴 수 없어 달걀 부리 마을로 걸어갔다. 선물로 들어온 김을 나눠서 박스에 포장해서 내게 선물을 많이 한 친절한 작가님께 부치고 한 숨 돌린다.

원흥역 옆에 있는 병원에 걸어 가도 시간은 충분하겠지만 너무 더워서 버스를 타려고 하니, 마침 3분 내에 도착하는 버스가 있어서 다행이다. 미리 가서 시원한 병원에 가서 몸을 식혀야 할 것 같았다. 땀이 안경 너머 눈으로 흘러들어 영 불편한 것이 아니다.

원장님은 별 뾰족한 수가 없으니 2월에 연골 주사 맞았으니 8월쯤에 주사 맞으면 된다고 하시며 아주 불편할 때만 먹으라며 약을 1주일 분 다시 처방해 주신다. 새끼손가락 석회 제거 수술 비용 상담을 받고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왔는데 기진맥진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40여분 자고 일어나 1박을 해야 하는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백팩에 넣었다. 친구에게 줄 선물이 없나 하고 찾아보니 수입 원단으로 만든 아끼던 화장품 파우치가 하나 있어 포장용 봉투에 담는다.

친구를 만나면 뭐든 주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니 아까울 것은 없다.

명동역 주변이니 충무로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명동역, 도착해서 전화하니 친구는 필 스테이 근처에 마중 나와 손짓하고 있다. 이른 봄에 올라왔을 때 만나고는 한 여름에 만난 것이다.

객실은 12층이라서 중국대사관과 화교학교 마당이 다 보이며 남산 길과 남대문 시장 방향이 훤하게 보이는 곳이어서 전망은 꽤 괜찮았으며 친구

딸내미가 신경 써서 방을 예약해 준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원래 하룻밤 강릉이나 속초라도 가서 자고 오자며 부추기기도 했지만 시간이 잘 맞지도 않았거니와 딸 식구의 코로나 문젠데 마음 놓고 여행할 계제가 아님을 깨닫고 명동으로 잡은 것이다. 엄마 취향이 백화점에서 잘 논다며 딸이 롯데 백화점이 가까운 곳으로 해준 것이라고 해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이 친구는 이렇게 귀엽다. 세상 어려운 것 모르고 살았으며 지금도 그렇다.  내 브런치 글을 읽다가 "너는 생전 심심한 거 모르겠네. 난 할 일도 없고 심심해서 우울증이 올 것 같다. 내 여동생도, 엄마도 우울증이다. 다들 너무 편해서 우울증이 왔다고 할 정도로 편하다"라고 한다.

"내가 심심할 틈이 없는 것은 사실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라 어쩔 수 없다."며 응수하는 나.

친구 사위는 명동교자에 가서 저녁 식사하라고 권하면서 명동 지리를 모를까 봐 식당 지도까지 찾아서 카톡으로 보내오고 난리도 아니다. 저희들 어렸을 때 한 동네에 살았으니 나도 부산 사람인 줄 알고 그러는데 옆에서 내가 "걱정 말라고 해라"하니 그때서야 "아줌마 서울 사람이다. 지리 훤하다." 고 한다.

모르면 지도 찾아가면 되지. 그리고 명동 교자는 대학 때부터 알고 있는 곳인데 하도 오래돼서 위치가 바뀌었나 그것만 확인하고 찾아갔다. 친구 사위는 칼국수를 먹는지, 교자를 먹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하는가 보다. 친구가 말한다. "난 교자 시켰고, 친구는 콩국수 먹는단다. 국산 서리태로 만들었다고 그걸 시켰다."

국수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지만 여름엔 콩국수 한 그릇은 먹고 지나가야 여름을 난 것 같다. 언제부턴가 진짜 콩국을 만나기 어려워 냉면만 먹게 되었는데, 식당에 들어서며 벽에 붙은 포스터를 보니 콩국수는 국내산 서리태로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저녁을 먹고 났다. '어찌어찌]'는 그 사위가 전화를 안 끝내고 장모에게 무얼 먹어라, 교자가 맛있다, 국수사리도 리필된다, 왜 콩국을 먹느냐 등등 여러 말을 하는 것을 마주 앉아 듣게 되니, 장모가 친구랑 식사 좀 하는데 말이 너무 많다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친절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베풀어야 할 것 같다.

소화도 시킬 겸 밤거리를 걷기로 한다. 오늘 하루종일 움직이고 병원에서 집까지 걸어 이미 만보를 훨씬 넘겼다. 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나 콩국수와 만두를 먹어서 걷지 않으면 소화가 쉬이 될 것 같지가 않다. 명동의 밤거리를 오랜만에 걸으면서 코로나가 주고 간 후유증이 심각한 것을 알게 되었다. 뉴스로만 접하던 일들이 관광객으로 넘쳐나던 거리가 휑한 것을 보니 모두들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일이 피부에 와 닿았다.

자연히 발걸음은 명동성당으로 옮겨지고 성모상 앞에 가서 친구는 기도했다. 별일 없기를 소원했을 거라고 짐작한다. 기도를 마치고서 "난 개신교면서 기도했다" 길래. "잘했어. 똑같은 하나님인데 어때."

중간중간 화장실 간다고 일어나 보면 친구는 잠을 못 자고 유튜브를 보고 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 아침이 되어서야 친구는 잠이 들었고 나는 살며시 빠져나와 아침의 명동 길을 걸어 다시 성당으로 올라가 보았다. 성모상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간절한 신도들의 모습이 숙연하다. 덩달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마치고 성당을 한 바퀴 돌면서 모두가 무사하기를 소망해 본다.

돌아오니 친구는 일어나 딸과 통화를 하고 있다. 1월에 검사를 해 본 내가 9시가 되면 확인 문자가 온다고 알려줬더니 딸에게 보건소에서 곧 연락올 거니까 기다려 보자며 끊었다.

조식을 하고 와서 나갈 준비를 하고 어제부터 석촌호수를 보고 싶다고 하는 친구에게 가이드할 태세를 갖춘 나는 모쪼록 음성 확인 문자가 오길 기다려 가벼운 마음으로 석촌호수에 가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에게서 어린이집 교사의 음성 확인 문자가 도착해서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며 친구를 천천히 오라고 한다. 우린 한시름 놓고 석촌호수로 향했다. 동대문역사공원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해서 잠실로 가면서 얼마나 다행인지 얘기를 나눴다.

코로나19에 한 사람이 확진이 되면 그 반경에 몇 가족이 있는지, 또 가족이 속해 있는 기업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지 상상을 하니 아찔한 마음이다. 친구 사위의 회사에서는 사원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확진자가 나오면 사표를 써야 한다고 한다. 또한 아들(우리 둘째 딸과 동창)은 제 여동생과 만나서 밥을 먹었는데 이런 사실을 아내, 즉 친구 며느리에게는 비밀로 해야 했다. 지난봄에 갑상선 암 초기증세라서 수술을 했기 때문에 건강문제에 민감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문제가 일파만파가 되어 각 가정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한시름 놓고서 석촌호수를 바라보며 잠시 걷는다. 친구는 캐리어에 딸네 집에 줄 것을 가득 담아 와 놓고도 어제 강남에서 애들 좋아하는 잼을 한병 사서 가방에 넣고, 손주 옷 사서 쇼핑백에 잔뜩 넣은 할머니 마음, 어미 마음이 무거운 짐이 되어 팔이 아파 오래 걸을 수는 없었다. 어미 마음을

그 누가 알랴, 같은 입장이니 더 주고 싶은 심정을 알지. 자식들은 무겁게 왜 들고 다니냐고 핀잔을 주지만 그것 또한 고생스러운 엄마를 생각해서겠지.

호수 물결 위에 그림같이 미끄러지는 청둥오리들을 보며 위안을 받고, 물가에서 쉬고 있는 거위들을 보며 힐링을 한다. 거위들을 가까이 보는 것이 신기해서 "얘들아~ 사진 한 장 찍을게~" 하며 사진을 찍으니 조용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꽥! 꽥!" 소리를 지르며 쏘아본다.

"미안해~ 쉬는데 방해했어? 갈게, 쉬어~"

자신들의 초상권을 침해했다고 한소리 하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해하며 발길을 돌렸다.

숨 돌릴 틈도 없이 하루를 살아 낸 것 같다. 그래도 마음 편히 오늘을 살아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photo by young.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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