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라이프]"어떻게 교습하면 보다 쉽게 잘 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죠"...스카이72 이기성 엑스페론아카데미 원장
[골프&라이프]"어떻게 교습하면 보다 쉽게 잘 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죠"...스카이72 이기성 엑스페론아카데미 원장
  • 골프비즈뉴스
  • 승인 2019.08.27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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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가수 이수미 동생
-법률전문가
-KPGA 챔피언스 투어 선수
-트로트 가수
시상하는 이기성 원장
시상하는 이기성 원장

“골프는 기본이 중요합니다. 기본기술을 제대로 익히면 정상 체격인 사람은 80대 정도는 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죠. 기초가 완벽해질 때까지 필드보다는 꾸준히 연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챔피언스 투어선수이자 스카이72골프앤리조트 이기성 엑스페론 골프아카데미 원장은 “골프는 늘 기본에서 출발한다”며 “라운드 중에 샷이 흔들리면 골프스윙의 기본으로 돌아가면 리듬과 템포를 찾아 바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 원장은 골프교습에 대한 원칙이 있다. 골프에 입문하는 초보자는 볼부터 치는 것을 ‘절대금지’한다.

그의 골프교습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동작을 요구한다. 이유가 있다. “골프는 몸이 볼을 친다”는 그의 골프에 대한 철칙 때문이다. 따라서 스윙이 어느 정도 완성돼야 볼을 치게 한다. 보다 골프를 잘 하기 위해 골퍼에게 권하는 그가 개발한 16개의 동작은 다음과 같다. 

1.먼저 클럽을 갖고 앞에 놓인 볼을 보고 얼라인먼트(정렬)를 한다. 2.셋업을 한다. 드라이버의 경우 그립을 잡은 상태에서 드라이버의 경우에 배와 그립 끝 사이에 주먹 1~2개의 간격만큼 떨어지도록 한다. 3.발은 가운데로 모으고 볼을 중심에 둔다. 4.볼이 날아갈 방향을 확인한다. 5.클럽별로 달리해 스탠스를 취하도록 한다. 7번 아이언의 경우에 볼을 스탠스 중앙에 둔다. 6.그런 뒤 상체를 자연스럽게 숙인다. 이렇게 하면 팔이 편안해 진다. 7.하체를 고정하고 히프를 약간 끌어 올리면 허리가 자연스럽게 꺾인 상태가 된다. 8.무릎을 약간 구부린다. 9.이때 양 무릎을 안쪽으로 약간 모아주면 견고한 스탠스를 할 수 있다. 10.왼손으로 천천히 헤드를 뒤로 빼주는 테이크어웨이를 해준다. 11.양팔은 몸통에 붙여 유지한다. 12.왼쪽 어깨를 회전시킨다. 이때 양팔은 오른쪽 귀 방향으로 만세를 부르듯 들어주면 된다. 13.백스윙에 이어 톱스윙이 이루어지는 순간 왼쪽 히프부터 보디턴을 시작한다. 14.임팩트이후까지 머리는 임팩트존 뒤에 남겨둔다. 15.폴로스루때 헤드는 최대한 목표방향의 비구선을 따라간다. 16.헤드가 등 뒤로 넘어가도록 하는 피니시 동작을 5초이상 유지하도록 한다.

그는 입문자에게 2주 동안 이런 동작을 반복시킨다. 4번은 반드시 이런 동작을 해보고 5번째 볼을 때리게 한다. 습관화되면 스윙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스윙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는데 이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게 이 원장의 티칭철학이다. 물론 레슨을 하면서 골프에 대한 에티켓이나 매너, 간단한 골프규칙도 틈틈이 알려준다. 골프의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골퍼를 지도하는 이기성 원장
아마추어 골퍼를 지도하는 이기성 원장

그는 스윙순서를 메모를 해주는 동시에 레슨일지도 써서 무엇이 잘 되는지, 무엇을 더 보완해야 하는지를 늘 점검해 골퍼의 기술을 습득하도록 노력한다.

사실 그를 보면 3가지에 놀란다. 프로골퍼가 아니었으면 무엇을 했을까. 그만큼 다양한 탤런트를 갖고 있다. 골프교습도 남다르지만 그가 트로트를 부르면 “가수야, 프로골퍼야?”라는 감탄사가 금방 나온다. 여기에 달필(達筆)이자 법(法)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 달필은 초등학교 때 천자문을 섭렵하고 붓글씨를 배운 덕이고, 법은 법률사무소에서 일한 때문이다. 

여러 재주가 있는데 프로골퍼가 된 사연이 있을 법하다.  

음악은 집안의 DNA이다. 경찰공무원이었던 부친이 남도판소리(唱)에 능했다. 여기에 7080세대들에게도 친숙한 ‘여고시절’을 부른 가수 이수미(67)가 그보다 2살 많은 누나다. 71년에 데뷔한 이수미는 70년대 가수상을 휩쓸었던 레전드다. 

피는 속일 수 없나보다. 중학교 때부터 기타와 노래를 정식으로 배웠다. 누나는 1970년 목포에서 고 3때 노래자랑에 나가 1등을 했다. 꿈을 키워 먼저 서울에서 가수로 자리 잡은 누나를 믿고 그도 1974년 상경했다. 오디션을 보고 곡(曲) 취입을 앞두고 육군에 입대했다. 제대한 뒤 78년 레코드를 제작했다. ‘꽃이 되리라’, ‘바람소리’가 들어 있던 LD판이다. 가수 윤시내의 레코드 ‘열애’가 출시된 날과 같았다.

그러다가 80년 누나 손님을 믿고(?) 정·재계 인사를 대상으로 여의도에서 ‘마부’ 레스토랑을 운영했다. 운이 없었나. 박정희 전 대통령 총격사건에 광주사태까지 벌어지며 정세가 흉흉해지면서 고객의 발길이 멀어지면서 3년 만에 폐업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법률사무소에서 사무장으로 15년간 일했다. 따라서 웬만한 법은 통달하고 있다. 은행지점장의 권유로 1995년 골프에 입문했다. 그러다가 실내연습장을 인수해 운영했는데 6곳이나 된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 집중적으로 하는 스타일이라 소속 프로와 함께 1주일에 3회 이상 라운드를 했다. 프로보다 거리가 더 나가는 장타자인 그는 머리를 올린 뒤 10개월20일만에 79타를 쳤다. 98년 한국프로골프협회 티칭테스트에서 6전7기만에 합격했다. 이후 KPGA 경기위원과 운영위원을 지냈다. 

이기성 원장이 제자들 및 엑스페론과 함께 만든 아마추어 골프대회
이기성 원장이 제자들 및 엑스페론과 함께 만든 아마추어 골프대회

2003년 일동레이크 골프클럽에서 열린 챔피언스 투어에 출전해 본선에 진출, 생전 처음으로 상금 63만원을 손에 쥐었다. 지금이야 보잘 것 없지만 1년 동안 172만원의 상금을 획득한 것은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였다.

협회 일에 관여하다보니 불합리한 점이 보였다. 한집안 식구인데 투어프로와 세미프로로 이원화된 것에 회원으로써 괴리감을 느꼈다. 이에 뜻을 같이한 이사들과 함께 협회와 오랜 회의 끝에 모두 회원제로 바꿨다. 이전에 법률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협회의 정관을 모두 암기한 뒤 끊임없이 논쟁과 토론, 논의 끝에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의 레슨은 독특하다. 아니, 쉽게 가르친다. 이를테면 슬라이스 구질로 고생하는 골퍼에게는 훅 구질이 나는 법을 가르쳐 볼을 제대로 칠 수 있게 한다. 어느 날 2부 투어 선발전에 출전한 프로선수 A가 찾아왔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스코어를 줄이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그가 보는 순간 그립을 한 ‘손 높이’가 눈에 들어왔다. 어드레스 때 손 높이를 낮추고 임팩트 때 끝까지 볼을 쳐다보라고 권했다. 겨우 30분간의 레슨이었다. 그런데 A는 다음날 9언더파를 쳤다고 연락이 온 것이다.

볼을 자꾸만 당겨서 쳐 훅이 나는 골퍼는 “임팩트 이후 그냥 왼팔을 쭉 펴라”고 한다. 오른팔의  팔꿈치가 하늘로 들리는 골퍼에게는 “팔을 옆구리에 붙여 만세”외치라고 한다. 그러면 어깨 턴이 자연스럽게 이뤄져 플라잉 엘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팔과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사람은 상체를 편안하게 숙이면 힘이 빠진다고 설명한다.

그는 골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다. 후배 제자들과 아마추어 골퍼를 위한 전국대회를 만들었다. 국산 골프볼 엑스페론(대표이사 김영준)과 함께 4년전 레드티 엑스페론 전국 여성아마추어골프대회를 창설했다. 이를 확장해 남녀대회로 만들어 올해로 4회째를 맞는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7개 지역에서 1250명이 출전해 예선을 거친 120명이 27일 파인스톤 컨트리클럽에서 최종 결승을 갖는다.

물론 이 원장 혼자하는 것은 아니다. 프로골퍼로 활약하는지역장들의 정성이 깃들어져 운영이 잘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서재복, 강원 류주영, 장채정, 충청 육종승, 부산 박성환, 경상 김종오, 제주 김룡, 전남 오유철, 송운천, 전북 김선용 등이다. 이들은 이기성 원장과 함께 고객모집뿐 아니라 경기위원과 스폰서 유치및 대회 운영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한다. 

이 원장은 볼도 잘 친다. 물론 프로니까 그렇겠지만 주니어 출신이 아니면서도 곧잘 친다. 베스트는 스카이72에서 ‘노(No)보기’로 버디만 7개 잡아낸 7언더파 65타다. 

이기성 원장의 꿈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아마추어 골퍼들을 어떻게 가르치면 보다 쉽게 골프기술을 습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늘 연구하고 있다”면서 “기회가 되면 국산골프용품을 제작해 해외에 수출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그의 희망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