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is~]미국에서 골프라는 이름은 언제 썼을까.
[golf is~]미국에서 골프라는 이름은 언제 썼을까.
  • 토니오 전문위원
  • 승인 2020.04.1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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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골프라는 이름이 처음 거론된 것은 1659년 뉴욕주 올버니에서 길거리 골프금지령이 내려졌을 때다."

※미국 뉴욕주의 주도. 뉴욕, 버펄로, 로체스터, 용커스, 시러큐스에 이어 뉴욕 주에서 6번째로 큰 도시.

1609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근무하던 영국인 탐험가 헨리 허드슨이, 할버마엔 호로 허드슨 강을 탐험하면서 올버니에 도착했다. 네덜란드는 1614년에 원주민들과 피혁을 거래하는 장소로, 포트 나소를 이 땅에 세웠다. 이후 유럽 각지에서 이민이 도착하면서 1624년에는 뉴네덜란드 최초의 정착지인 포트 오렌지를 건설했다. 1652년에 네덜란드 서인도회사는 포트 오렌지가 발전되자 이름을 베버빅이라고 불렸다. 

1664년에 네덜란드령 뉴네덜란드는, 영국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뉴네덜란드에서 올버니로 개칭됐다. 이는 올버니 공 제임스 스튜어트(나중에 제임스 2세)를 기념해서 지은 것이다. 1686년에는 시의 정책을 세웠다. 

1754년 북미 7개 영국령 식민지가,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대불 공동 방위 조약을 맺기 위해, 올버니 회의가 열렸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식민지 연합 정부 수립(올버니 연합안)을 재안하면서 이것이 채택됐다. 이 제안은 영국 본국에서도 각 식민지에서도, 반대해서 발효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연합안은 나중에 미국 독립전쟁전에 열린 대륙 회의에서 열렸고, 다시 논의되었다. 프렌치-인디언 전쟁 중에는 올버니에는 영국 식민지 연합군 총사령부가 설치됐다. 

1777년에는 캐나다에서 남하해서 올버니 함락을 목표로 삼은 영국군을, 올버니 북쪽에서 대륙군이 영국군과 싸웠고, 결과적으로 승리했다. 독립한 뒤에, 뉴욕 주 주도는 올버니에서 하류에서 80km지점에 위치한 킹스턴에 있었지만, 1797년에 올버니로 옮겼다. 

올버니는 1825년 이리 운하의 개통으로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리 운하가 허드슨강의 본류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올버니는 주변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 및 섬유제품의 수송거점으로 발전했다. 그외에도 인쇄업, 출판업도 발달했다.

올버니의 종합 대학교로는 뉴욕 주립 대학교 올버니, 세인트 로즈 대학교, 엑셀셔 대학교가 있다. (참고자료=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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