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43.성수동 제화(製靴)거리의 장인(匠人)정신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43.성수동 제화(製靴)거리의 장인(匠人)정신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09.2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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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서울숲에 가자는 친구를 만나러 성수역에 내렸다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나기로 한 출구를 찾아 걸어가는데 유리안에 먼지 쌓인 구두들이 전시되어 있어 놀랐다.

! 그러고 보니 여기가 성수동 제화 거리인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구두의 대부분이 성수동 구두 공장에서 생산되었다는 얘기를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원래 염천교에서 시작된 구두 공장이 성수동으로 옮긴 것인데 이마저도 해외에 공장들이 이전했는지 중국 제품이 시장을 점유하고부터는 성수동도 예전과 같은 호황을 누리지 못하고 지하철 역사 전시관의 흐릿한 불빛처럼 쇠락해져 가는 것 같아 안쓰럽기만 하다.

염천교는 서울 중구 중림동 앞에서 남대문을 향해 경의선 철길 위로 난 다리의 이름이 염천교다. 다리는 지금의 서울역인 경성역이 들어선 1925년에 지었다. 그 무렵부터 구두상가가 염천교의 상징이 됐는데, 중림동 일대와 염천교 그리고 길 건너 봉래동에 이르기까지 구두를 만들고 파는 거대한 권역을 이루었다. 염천교에 있던 수제화 가게들은 대략 500여 곳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 대충 세어보면 그 10분의 1이나 남았을까 그마저도 여러 곳이 문을 닫았다. 서울역을 지나칠 때마다 거리는 한산하고 수제화라고 쓰인 종이는 어쩐지 낯선 땅에서 이방인처럼 삐뚜름하니 유리문에 붙여져 있다.

경성역으로 모이던 피혁 창고가 중림동과 일대에 있었고, 그에 잇대어 수제화 공장과 가게들이 들어섰다고 하는데 공장들은 1990년대 후반에 성수동으로 대거 옮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주변의 으리으리한 빌딩을 거너 다보며 나지막한 공장과 가게들이 겨우 생명을 유지하듯 명맥을 잇는 것처럼 보인다.

약속 시간보다 일직 도착해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성수역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제화 특화거리인 것을 알리려는 노력이 역력하게 보인다. 대형 구두 조형물이 보이기도 하고 제화 거리 안내도도 역사 주변에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종사자들의 노력에 비하여 구두공장은 곧 없어질 거라는 말들이 많다.

작년인가? 미국의 유명한 **보틀이라는 커피숍 1호점이 성수동에 오픈한다고 새벽부터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사진을 본 이후에 제화 거리로 부상하는 게 아니고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부각되어 새로운 패션 거리로 탄생하는가 보다. 원래 세계적 유명 브랜드는 단순히 뜨는 동네'라는 이유로 매장을 열지는 않는다는 게 그들의 원칙이라고 한다. 구매력 있는 손님이 있어야 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돋보이게 해 줄 수 있는 분위기도 필요하다는 얘기인데, 최근 성수동 수제화 거리 근처 카페의 성장과 가구, 실내장식 소품, 생활용품, 패션 등의 브랜드 입점이 늘면서 부동산 가격까지 크게 오르고 있다. 이로 인해 수제화 거리는 높아진 월세와 인건비 등으로 폐업이 수순이 되었고 폐업한 자리엔 새로운 상권의 배후 효과를 노린 식당과 카페들이 입점하고 있다. 리모델링이 한창인 건물도 즐비하다.

또 한쪽에서는 외국인 남자 모델을 가운데에 놓고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장비들을 부리면서 사람들이 지나는 통로를 차단하며 패션 화보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야말로 성수동 수제화 거리가 몰락하고 있는 것인데 수십 년 경력을 보유한 장인들이 모여 있는 성수동 수제화 거리는 도심형 소공인 집적지로 선정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수제화 생산단지라고 한다. 하지만 명맥이 끊기기까지 오랜 시간이 남지 않았다는 게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시장 경쟁과 변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흐름이지만 한국 사회 문화적인 측면에서 성수동 수제화 거리 몰락 가능성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성수동에서 수제화 제작공으로 오랜 기간 현직에 종사해온 A사의 대표이사는 "수제화 거리에 있는 업체 사장님들 사이에선 수제화 거리 수명을 길어야 10년 정도로 보고 있다대부분의 수제화 판매업체들이 직원을 두지 않고 사장이 나와서 일을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성수동의 정체성으로 불리는 가치 중의 하나가 공존. 수제화 거리, 카페 거리, 스타트업 거리, 아티스트 거리, 맛집 거리 등이 어울려 있는 모습과 포개진다.

한편으론 새로운 물결이 부상하면서 다른 한쪽은 쇠락의 길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일본, 이탈리아 등 국가에선 수제화같이 도제 장인 업종의 경우 직계 자손 승계를 할 수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지만 우리나라는 대··소기업의 하청 노동자 취급을 하는 현실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고 너와 나 상생하면서 나가는 길을 서로가 모색하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친구를 만나기 전 잠깐 구두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전시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겨 본다.

우리 정부는 이토록 제화로 조성된 특화된 거리를 지원하고 보호해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줄 수 있는 여유는 없는 것인가? 아직도 우리 국민 모두가 골고루 혜택을 받으며 마음 놓고 일 할 수 있는 풍토의 나라를 건설 중에 있는 것인가?

*photo by young.

*참고: 이투데이

/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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