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조 박사의 '꿀잼' 골프룰]57.신한동해오픈 우승자 서요섭의 Pink & White
[정경조 박사의 '꿀잼' 골프룰]57.신한동해오픈 우승자 서요섭의 Pink & White
  • 정경조 전문위원
  • 승인 2021.09.13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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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동해오픈 우승자 서요섭. 사진=KPGA 민수용 포토
신한동해오픈 우승자 서요섭. 사진=KPGA 민수용 포토

한국프로골프(KPGA) 열두 번째 대회인 제37회 신한동해오픈에서 서요섭(25·DB손해보험)이 4라운드 합계 15언더파 269타로 올 해 두 번째 우승을 했다. 우승 후 현장 인터뷰에서 지난 8월 15일 제64회 KPGA 선수권대회 우승 당시 마지막 날 입었던 것과 똑 같은 핑크 셔츠와 흰색 바지를 입은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는 “지난 주 대회 때도 상위권이었는데 부모님이 핑크셔츠 입는 것에 반대하셨고, 결국 마지막 날 잘 못 쳐서 상위권에 들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대회 성적이 좋으면 마지막 날 핑크셔츠를 입겠다고 말씀드렸었다”고 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46·미국)는 4라운드 날에는 늘 ‘Red & Black’으로 빨간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는다. 1996년 프로 데뷔 후 지난 25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 일요일 복장은 최소한 색상 면에서는 많이 바뀌지 않았다. 많은 골프팬들이 레드 앤 블랙의 타이거 우즈를 기억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확정 짓는 마지막 퍼트를 성공 한 뒤 그가 주먹을 휘두르는 모습이다. 우즈는 이날 오거스타 내셔널에서 빨간색 나이키 스웨터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우즈가 최종 라운드에 빨간색 옷을 입는 데 집착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즈는 2013 AT&T 내셔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는 대학 시절부터, 또는 주니어 골프 시절부터 항상 빨간색을 입었다. 그냥 미신(superstition) 때문에 그것을 고수했고 효과가 있었다. 나는 우연히 실제로 빨간색이 상징인 학교를 선택했고 우리는 행사의 마지막 날에 빨간색을 입었다. 앞으로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타이거 우즈. 사진=홈페이지
타이거 우즈. 사진=홈페이지

우리는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을 습관(習慣)이라고 한다. 그런데 엄청난 압박감에서 승부를 다퉈야 하는 스포츠분야에서는 그 습관이 루틴(Routine)이 되기도 하고 징크스(Jinx)가 되기도 한다. ‘징크스(Jinx)'는 불길한 징후를 뜻하지만 일반적으로 선악을 불문하고 불길한 대상이 되는 사물 또는 현상,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일 등을 말하는데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魔術)에 쓰던 딱따구리의 일종인 개미잡이새(학명: Jynx torquilla)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새는 흉조로 여겨졌는데 영어이름인 ‘라이넥wryneck’(wry는 뒤틀린, neck은 목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목을 180도 회전할 수 있고 실제로 무엇인가의 위협을 받으면 목을 꼬면서 뱀처럼 소리를 낸다고 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징크스가 생기는 이유는 어떤 일이 일어난 사건의 원인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 설명함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과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외부의 어떤 대상 탓을 함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모면해보기 위한 비겁한 변명이다. 징크스는 일종의 미신이며 인과관계보다는 우연의 결과가 더 많고, 대부분 패배의 원인과 관련된다. 

최악의 상황은 이런 징크스가 입스로 연결될 때이다. ‘입스(yips)’란 골프에서 스윙 전 샷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발생하는 각종 불안 증세로서, 부상 및 샷 실패에 대한 불안감, 주위 시선에 대한 지나친 의식 등이 원인이 되어 손 · 손목 근육의 가벼운 경련, 발한 등의 신체적인 문제가 일어나는 것이다. 미국 메이요클리닉의 연구 결과, 전 세계 골퍼의 25% 이상이 입스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스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메이저 3승을 거둔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골퍼 토미 아머(Tommy Armour, 1896~1968)라고 알려져 있는데, 1927년 쇼니 오픈 2라운드 파5 17번 홀에서 18오버파 ‘23타’라는 스코어를 기록한 후 “입스가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2016년 마스터스 1번 홀에서 6퍼트를 한 어니 엘스(남아공)는 라운드가 끝난 뒤 “머릿속에 뱀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습관이 항상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골프에서 스윙을 하기 전후에 나타나는 일련의 습관화된 행동이나 심리적인 과정을 루틴(routine)이라고 하는데, 골프뿐만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선수들이 하는 일정한, 반복적인 행동은 모두 루틴에 포함된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에서 루틴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루틴의 역할은 첫째, 무의식적인 멘탈상태에서 실제 스윙동작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둘째, 샷과 샷 사이의 시간적 간격으로 인해 흐트러졌던 주의를 집중하게 해 준다. 결국, 루틴은 최상의 샷을 할 수 있게 하는 모든 준비단계를 말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패배의 원인을 근거 없는 미신을 만들어 의지하는 사람은 징크스의 마법에 빠지는 것이고, 승리를 향한 노력의 과정에서 습관화된 행동을 긍정의 신호로 해석하는 사람은 루틴의 수혜자가 되는 것이다. 레드 앤 블랙을 입으면 타이거 우즈처럼, 핑크 앤 화이트는 서요섭 프로처럼 플레이 할 것이라는 믿음은 징크스도 루틴도 아닌 엄청난 착각일 뿐이다. 흘린 땀으로 레드가 핑크로 색이 바랄 때 까지 노력하지 않으면서 고수가 되길 바라는 것은 글자를 읽지도 못하면서 안경을 쓰면 글자를 모두 읽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모든 행동이 남을 탓하면 징크스가 되고 자신을 믿으면 루틴이 된다. 

글/정경조 한국골프대학교 교수, 영문학 박사. 대한골프협회 홍보운영위원, 저서: 말맛으로 보는 한국인의 문화, 손맛으로 보는 한국인의 문화, 살맛나는 한국인의 문화, 詩가 있는 골프에 山다, 주말골퍼들이 코스따라가며 찾아보는 골프규칙(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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