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라이프]"미래의 먹거리는 늘 찾아야죠"...33년간 외길 고집해 强小기업 이룬 박운학 장오에스텍 대표이사
[골프&라이프]"미래의 먹거리는 늘 찾아야죠"...33년간 외길 고집해 强小기업 이룬 박운학 장오에스텍 대표이사
  • 안성찬 골프대기자
  • 승인 2019.05.16 0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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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부스 제작해 일본수출
캠핑카 제작...전문엔지니어 고용으로 승부
17년 골프구력에 베스트스코어 85타
캠핑이 좋아서 캠핑카를 국내 지형에 맞게 직접 제작하고 있는 박운학 장오에스텍 대표이사
캠핑이 좋아서 캠핑카를 국내 지형에 맞게 직접 제작하고 있는 박운학 장오에스텍 대표이사

“국내 기업환경 상황에서 중소기업이 힘들지만 나름대로 보람도 있어요. 특히, 창립 때부터 15년 이상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하고 있는 직원들을 바라보면서 기업운영을 더욱 알차고 잘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강소기업이 살아나야 고용창출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33년간 한 우물만 파 강소(强小)기업 이룬 ‘외골수’ 박운학 장오에스텍 대표이사는 금속정밀 분야의 전문가다. 특허와 실용신안을 무려 20개나 보유하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이 험난한 사업임을 박 대표는 일치감치 체득했다. 정밀기계 제품을 한 가지만 생산하려고 해도 기계설비가 20~30억 원이 들어가는 것을 기본이기 때문이다. 투자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주문이 제때에 들어오고 일의 양도 많아야 한다. 직원들을 고정으로 채용하고 있어야 한다. 주문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전문엔지니어를 늘 고용하고 있어야 한다. 박 대표는 인건비가 비싸도 직원을 모두 내국인으로 채용하고 있다. 급여가 높지만 그만큼 일을 잘하고, 부지런하며, 제품을 제작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는 것이 그 이유다.   

박 대표는 학교를 졸업하고 친척집에서 운영하는 금속전문회사에 첫 발을 디딘 것이 기계와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됐다. 한 분야에만 17년간 근무한 박 대표는 1998년 부장직급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뒀다. 뭔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2000년 초 노래방기기사업에 손을 댔다. 하지만 1년 만에 제대로 쓴맛을 봤다. 

“사실 끝물에 들어간 것이 잘못됐어요. 했던 것을 해야 하는데 사업선택도 잘못이었고요. 와신상담(臥薪嘗膽)에 들어갔습니다.” 

한동안 박 대표는 집안에만 진을 치고 바깥세상을 멀리했다. 오직 술만이 친구였다. 폭주(暴酒)로 시간을 보냈다. 이를 극복하려고 일용직 일까지 했다. 햇빛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다가 내가 무엇을 가장 잘 할까하고 고민했다. 그러던 중 부모님이 ‘텃밭을 가꾸고 싶다’며 경기도 남양주 진접읍 산자락에 전원주택을 짓고 둥지를 트셨다.  

박운학 대표
박운학 대표

정밀기기 사업을 구상하다가 일본을 찾았다. 융자를 받아 일본기계를 수입해서 노래방 기기의 케이스를 제작했다. 4~5년간 일거리 주문을 받으면서 회사가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처음 시작해서는 파리만 날렸습니다. 17년간이나 제가 한 일인데도 영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주문을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이전 직장에서 거래하던 곳을 찾아 나섰지만 가격경쟁에서 상대가 되질 않았습니다. 가격을 낮추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아 결국 제자리걸음이었죠. 기계설비비만도 수억이 들어갔는데 이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노래방 기기 케이스 주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일이 풀렸다. 밤낮으로 일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주문량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사업이 확장되면서 2006년 현재의 대지 6611 제곱미터 부지에 공장을 직접 지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주문이 들어왔다.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었다. 지인이 당시 사행오락인 ‘황금성’을 제작하는 오락기 공장을 하는 사업자였다. 그런데 납품업자가의 제품이 불량이 많은데다 애프터서비스도 엉망이었던 것. 이때 원청사업자가 샘플을 한번 만들어보라고 박 대표에게 주문을 했던 것이다. 2년간 납품을 하면서 채무도 거의 변제했다. 하지만 오락시장이 철퇴를 맞으면서 제품 제작보다는 A/S만 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주문이 줄면서 회사에 위기가 닥쳤다. 직원만 20명이었으니 당장 급여가 막막했던 것이다.

흡연부스를 제작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박운학 대표이사
흡연부스를 제작해 일본으로 수출하는 박운학 대표이사

“‘위기는 기회’라고 하지 않았나요. 이왕이면 내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죠. 장기적으로 기업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일본과 미국 등 기계박람회를 찾아 다녔습니다. 일단 미국제품을 벤치마킹하기로 했어요.”

장오에스텍은 노래방과 오락기 기기 제품에서 벗어나 전기, 전자, 통신, 방송장비, IT산업 등의 하드웨어적 구축장비인 랙 캐비넷, 콘솔데스크, 부품 등 다양한 종류의 판금물 및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는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 엔지니어와 모든 생산 공정 시스템인 SPLPS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하다. 특히 고객의 모든 제품 제조의 각 공정을 분석해 생산성 및 이익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보다 나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기술개발 및 제품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 흡연부스를 만들어 수출하고 있으며 캠핑카도 제작하고 있다.

“소득에 따라 트렌드가 바뀐다고 하잖아요. 국민소득이 3만 달러시대에는 레저문화가 발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캠핑카를 시작했어요. 물론 제가 캠핑을 좋아합니다. 학창시절에 보이스카웃을 하면서 텐트를 치고 캠핑을 많이한 즐거운 추억도 있고요. ”

기업을 경영하면서 박 대표에게는 하나의 철칙이 있다. 절대로 급여는 밀리지 않는다는 것. 아울러 정밀제조업이기 때문에 직원들의 복지와 건강에 항상 신경을 쓴다. 직원 생일에는 잊지 않고 선물을 챙기고, 장기 근속자에게는 해외여행을 시켜준다. 

틈나는 대로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는 박운학 대표이사
틈나는 대로 새로운 제품을 구상하는 박운학 대표이사

“가장 잘 한 일은 아마도 대학원에 다닌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우연한 기회에 숭실대 교수님과 술좌석을 몇 번 했는데 술을 줄이면 공부를 할 수 있겠구나 한 것이죠. 그래서 경영대학원에 입학을 해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올해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는 막연하게 경험과 감에 의존해서 기업을 경영해왔다면, 이제는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에 근거해서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대학원 수업이 경영을 합리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 것이죠.”

박 대표는 틈나는 대로 경영서적을 탐독한다. 호기심이 강하고 치밀한 성격인데다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탓인지 틈만 나면 새로운 ‘미래의 먹거리’를 구상한다. 요즘 관심사는 LED로 식물을 집안에서 키우는 것이다. 

박 대표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매사에 부지런하기는 쉬워도 게으르기는 어렵다’는 것을 실감케 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코 쉽지 않은 캠핑카도 먼저 시장조사를 마친 뒤 국내 시장에 맞은 캠핑카를 연구했다. 이론에 접근해 완벽하게 숙지한 뒤에 완제품을 만들어 냈다. 제작이 쉽지 않은 부품은 유럽이나 미국에서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다.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것을 좋아해 골프도 독학을 했다. 6개월 동안 스윙을 익힌 뒤 머리를 얹었다. 샷 이글도 해보았다. ‘엔조이 골프’를 하는 탓에 골프장을 17년이나 찾았는데도 베스트스코어 85타에 머물고 있다. 대학원에서 골프회장도 했다. 그리고 MBA 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박운학 대표가 흡연부스, 캠핑카에 이어 앞으로 어떤 획기적인 제품을 선보일는지 궁금하다. 그는 단 하루도 미래의 성공을 위한 씨앗을 뿌리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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