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그들은 붓으로 세상을 품었다...ACEP2020
[기고]그들은 붓으로 세상을 품었다...ACEP2020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0.08.28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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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작가의 작품
독일 작가의 작품

그들은 붓으로 세상을 품었다.- The Artists Embraced the World with their own Brush.

한국과 EU(유럽연합)의 60여 명의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필자는 2007년 “시각장애인 사진교육”을 주제로 동아미술제 당선 후 13년간 시각장애인 사진 교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을 운영하면서 사진과 예술에 대한 배움을 주고받고 있다. (사)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시각장애인들과  매년 사진전시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비록 정안인처럼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고도로 발달된 또 다른 감각인 촉각, 청각 등을 활용하여 사진을 찍는다. 그들의 사진 결과물을 볼 때마다 ‘이 작품들이야 말로 교과서나 교재에서는 볼 수 없는 창의적 예술 세계다. 그들이 우리에게 뉴 비전(new vision)을 보여준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에 참가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먼저 감상하고 서평을 하는 경험은 무척 가슴 설레는 일이다. 

황성제-FOOD(행복2)
황성제-FOOD(행복2)

본 전시회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은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삼라만상을 색감, 구도, 기법 등을 솔직하고 자유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한국 출신 아티스트 작품인지, 유럽연합 출신 아티스트들의 작품인지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림의 소재나 내용면에서 작가의 창의력이 돋보이면서도 놀랍게도 한국과 EU 아티스트 모두 화폭을 수놓고 있는 색채는 비슷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12색의 공통 색채를 쓰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지만, 유독 화려한 무지개 색채인 빨·주·노·초·파·남·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와 살아온 환경과는 관계없이 정열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눈에 띄는 색채를 공통으로 사용하는 것은 아티스트들 모두 자신만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아티스트들이 자기의 상상을 이렇게 멋들어지게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진정으로 “붓으로 틀을 깨는 예술가”다.

리투아니아 작가의 작품
리투아니아 작가의 작품

발달장애(developmental disability)는 특정 질환이나 장애를 지칭하지 않으며, 해당 연령에 이뤄져야 할 발달이 조금 더디게 가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아티스트들은 이것은 한낱 사회의 분류체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사회 일반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의 작품은 어둡고 슬플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은 대부분 아주 밝은 작품으로 어두움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내면의 마음을 거침없이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들은 작품을 통해서 꿈과 희망이 우주만물처럼 다양하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 ‘성스러운 바다’인 바이칼 호의 깊이만큼 생명력이 충만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작품 내용이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상상력과 많은 메시지가 표출되고 있는 데에는 아티스트들이 조급하게 직진하는 대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주변을 풍부하게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천천히 가다보니 많이 보이는 것이다. 

남궁청-마스크를 쓴 사람들
남궁청-마스크를 쓴 사람들

피카소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린 아이에게 구체적인 기술을 연마하는 미술교육을 시키지 말라고 했다. 이는 어렸을 때 틀에 박힌 예술을 경험하는 것보다 새로운 시각, 상상력과 창의력이 예술교육에서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국과 EU 발달장애 아티스트들의 작품에서도 최고 화가들의 조언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우선시하고 틀에 갇혀 있지 않은 풍부한 창의성의 발현을 보여주고 있다.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팀 버튼 감독의 영화 ‘이상한 나라 앨리스’가 떠오른다. 화려한 색상의 표현들과 함께 ‘공상없는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을까?’로 영화는 시작한다. ACEP 2020 발달장애 아티스트 한국특별전 “붓으로 틀을 깨다”에 참여한 60여명의 국내외 아티스트들은 평면 작업이지만 그곳에서 음악소리도 들리고 풍경과 동물과 인간의 대화소리도 들리는 매혹적인 상상력의 성찬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소녀 앨리스처럼 불가능이 없는 이상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행복하게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티스트들은 틀을 깨고 사랑과 행복이란 붓으로 세상을 품어버렸다. 
이제는 관람객이 자신의 틀을 깰 차례이다. 글/양종훈 상명대 대학원 디지털이미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