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찬의 골프이야기]캐디피 15만원 시대의 한국골프 자화상
[안성찬의 골프이야기]캐디피 15만원 시대의 한국골프 자화상
  • 안성찬 골프대기자
  • 승인 2020.08.18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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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CC

"소위 명문 골프장이 캐디수급의 어려움을 앞세워 캐디피를 올리면 우리 골프장도 올리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인근지역의 골프장에 캐디를 빼앗기기도 하지만 회원들이 캐디들에게 캐디피 인상을 부추키는 것도 한몫합니다."(수도권 골프장 K 대표이사)

올리는 것만이 능사인가.

서비스 요금인 캐디피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다. 이전에는 캐디가 요구해서 캐디피가 올랐는데 요즘에는 골프장이 알아서 인상한다. 캐디피는 골프장과 관계없이 전적으로 골퍼가 지불하는 봉사에 대한 팁이다. 재미난 사실은 캐디피는 서비스에 따른 팁임에도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옛날 옛적에 입장요금에 포함돼 골프장에서 받아서 캐디에게 주던 150원 안팎의 캐디피가 고객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어느 날부터 일정요금으로 그냥 굳어져 버렸다. 플레이를 하는 고객이 내야 하는 세금없는 돈이다. 

효성그룹의 경기도 이천 웰링턴 컨트리클럽(대표이사 이인호)는 국내 골프장 중 처음으로 지난 15일부터 캐디피를 15만원으로 올렸다.

캐디피 15만원은 국내 최고가다. 물론 이보다 비싼 곳도 있다. 다만, 외국어 가능자에 한해 16만원을 받는 골프장도 한두곳이 아니다. 

소수 회원제로 운영하는 웰링턴 뿐만 아니다. 퍼블릭 골프장들도 캐디피 인상에 앞장서고 있다. 코오롱 그룹 소유의 강원 춘천 라비에벨 컨트리클럽(대표이사 이종윤)도 14만원으로 올렸다.

따라서 소위 명문골프장을 자처하는 골프장들은 줄줄이 캐디피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캐디피를 올린다고 해서 골프장이나 캐디를 비난할 일은 아니다. 골프장은 이익을 추고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보다 양질의 캐디를 고용해 서비스를 강화하고, 고객이 만족할 수 있다면 '골프장-캐디-고객'이 '윈윈'하는 셈이니까. 다만, 슬그머니 오르는 캐디피가 그 골프장을 이용하는 회원들이나 고객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골프장이 겉으로는 고객들에 대한 서비스 강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캐디수급이 아닐까 싶다. 골프장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캐디를 모집하는 것을 보면 캐디수급은 골프장의 난제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어찌보면 캐디피가 오르는 이유중 하나가 그린피와 무관하지가 않을 수도 있다. 90년대 골프장들은 근거리 수도권 명문 골프장이나 2시간 이상 가야 하는 골프장도 그린피가 동일하거나 비슷했다. 수도권에서 그린피를 올리면 덩달아 올린다. 이유는 간하다. 그린피가 낮으면 '3류 골프장으로 전락한다'는 골프장 오너와 대표이사의 고정관념이 한몫했다. 

캐디피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지금도 한 때 '황제회원권'이었던 골프장들은 여전히 그린피가 고액이다. 기준지가가 비싸 세금을 많이 내다보니 그럴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린피는 어느 정도 차별화되고 있다. 골프장의 운영실정에 맞게끔 그린피를 조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그린피를 만들어 놓고 마케팅 차원에서 이벤트를 통해 그린피 할인을 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캐디피는 다르다. 어차피 캐디피는 골프장과는 관계가 없다. 그린피가 낮으면 낮을 수록 골프장이 유리할 수 있다. 비단 샐러리맨 뿐 아니라 재산이 수십억, 수백억을 가진 회원권 소지자들도 한푼이라도 절약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펑텅 돈을 쓰는 것 같지만 내기골프를 하거나 정산을 할 때 1000원 갖고 불편한 심기를 곧잘 드러내기도 한다. 캐디피와 그린피가 덜 나가면 골프장에서 식음료에 더 지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이 캐디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캐디수급도 문제지만 캐디피가 낮으면 명문 골프장에 '흠이 간다(?)'고 생각하는 골프장 운영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캐디로 인해 영업력이 떨어질 수 있다. 충청도 한 지역. 둘다 퍼블릭 골프장이다. 홀수도 같다. 먼저 H 골프장이 생겼다. 바로 옆에 S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캐디들이 몰려갔다. 그러자 먼저 생긴 골프장은 캐디가 확 줄어들어 영업에 타격을 입었다. 이 기회에 아예 퍼블릭답게 캐디를 없앨까도 했다. 그러나 경기진행 등 모든 것을 감안해 캐디를 고수할 수 밖에 없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캐디가 중요하다. 

국내 골프장의 경우 캐디피는 4인 기준에 12~13만원 선. 한국골프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2020년 국내 회원제 골프장의 캐디피는 평균 12만5200원, 대중제 골프장 캐디피는 평균 12만29000원으로 조사됐다. 지난 2011년 조사 당시 9만 원대 중반에서 26.5%나 올랐다. 그러다가 13만원에서 15만원으로 오르면서 무려 15%나 껑충 또 뛰었다.  

그런데 연간 입장객을 소수 정원을 받는 명문골프장의 캐디는 캐디피를 높게 받아도 오히려 수입은 줄어든다. 입장객이 적기 때문에 하루에 한 번밖에 18홀을 돌지 못한다. 하지만 나이트시설로 3부까지 운영하는 골프장의 캐디는 입장객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자신이 원하면 36홀 이상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연간 수입을 보면 훨씬 이득이다. 

캐디는 현재 골프장 정직원이 아닌 개인사업자다. 그런데 내년부터는 정부의 특수형태 근로 종사자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 방침에 따라 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 얼마를 내야 할까.

연간 소득계산을 위해 한국골프캐디협회 홈페이지 자료를 인용해 1개월 40경기에 90%출석해 1경기당 12만원을 받는다고 가정하고 총소득을 산출해 봤다. 연간 5184만원이나 된다. 세금 산정은 [(총소득-필요경비-소득공제)×세율–세액공제] 공식에 필요경비 300만원과 소득공제 300만원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과세표준소득 4584만원이 산출됐다.

세금은 개인사업자의 경우 사업소득세 3.3%를 원천 징수하고 4대보험료(국민연금 9%, 건강보험 6.67%, 고용보험 1.85%, 서비스업 산재보험 0.008%)를 계산하면 납부세액은 954만7000원이다. 

캐디피가 오르면 당장 캐디에게는 즐거운 일이다. 다만, 내년부터 소득이 늘면 그만큼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하므로 그리 반길일 만은 아니다. 특히, 대부분 골프장이 캐디선택제로 운영하는 일본을 따라가는 한국 골프장의 행태를 볼 때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는지'는 몰라도 국내 골프장도 점점 캐디를 없애거나 선택제로 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만큼 일자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회원제 골프장이나 산악지형의 골프장은 앞으로도 캐디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변화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해 '반짝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골프장의 입장객이 줄어들면 '캐디끼리 경쟁할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캐디피는 이제껏 오르면 올랐지 내려간 적이 없어 서로 발목을 잡을는지도 모른다.  

강원 춘천의 스프링베일 골프&리조트는 캐디없이 운영하는데도 티오프 시간을 풀로 채우고 있다. 캐디피에 부담을 느끼는 골퍼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을 볼 때 퍼블릭 골프장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골프장이 오래 동안 생존하려면 '상생'해야 한다. 골프장, 회원, 고객, 그리고 종사자들이 조금씩 양보하며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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