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견문록108&8]골프와 정치, 그리고 태릉골프장
[골프견문록108&8]골프와 정치, 그리고 태릉골프장
  • 안성찬 골프대기자
  • 승인 2020.08.05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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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 골프장
태릉 골프장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2번지 태릉 컨트리클럽이 54년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부동산정책에 진통을 겪고 있는 문재인 정부가 결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체력단련장인 태릉 골프장을 택지로 개발하기로 한 것. 따라서 당장이야 문을 닫지는 않겠지만 골퍼들은 태릉 골프장이 언제 빗장을 걸어 잠글는지 궁금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당정협의에서 "태릉 골프장 이외에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를 미래세대를 위해 개발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태릉 골프장에 아파트를 짓기로 결정을 한 것을 기정 사실화 했다. 아파트 1만가구가 들어선다는 계획이다. 

노원구 주민들은 청와대에 여의도 5분의 1인 태릉 골프장을 녹지로 남겨달라고 청원도 했고, 건설 반대 데모도 했지만 '소 귀에 경 읽기'였다. 노원구(을) 우원식, 노원구(병) 김성환 더블어민주당 국회의원도 반대목소리를 냈지만 메아리없는 외침에 그쳤다.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2005년 총리시절 수해가 났는데도 골프장을 찾아 구설수에 오를만큼 골프마니아였던 이해찬 더블어민주당 대표는 이번 태릉 골프장에 대해 한마디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6년에 개장한 태릉 골프장은 현존하는 국내 골프장 중 역사가 세번째로 오래 됐다. 1931년 현재 어린이 대공원에 자리잡았던 경성골프구락부는 1972년 문을 닫는다. 군자리코스는 서울컨트리클럽으로 이름을 바꿔 1964년 문을 연 한양 컨트리클럽과 동거(?)를 하게 된다. 2년 뒤 1966년엔 부산 컨트리클럽과 태릉 골프장이 개장했다. 경기도 군포 안양 컨트리클럽은 1968년 문을 열었다. 

골프장 건너편이 태릉이고, 불암산이다. 특히 골프장이 들어서기전부터 노송보호지역이었다.

한국 프로골퍼 1호이자 1941년 일본오픈에서 우승한 연덕춘(1916-2004)이 기본설계한 태릉 골프장은 한국프로골프사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국내 초창기 선수지망생들이 군자리코스에 캐디를 하면서 골프에 입문해 프로골퍼가 됐듯 이곳도 마찬가지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창립회원인 조태운(81)이 1966년부터 20년간 이 골프장 소속 프로를 지냈다. 이오순(58) 프로도 이곳에 연습을 했다. 태릉 골프장은 1970년대 중반까지 아시안 투어의 한국오픈과 한국프로골프(KPGA)투어 KPGA 선수권 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했다. 한국프로골프, 특히 여자프로골프가 세계적인 한류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태릉 골프장같은 곳에서 많은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태릉 골프장은 1966년 육군사관학교 생도의 훈련용 부지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육사 전용 골프장으로 변경했다. 그린벨트로 지정된 건 1970년대다. 2018년 태릉 골프장 부지를 택지로 개발하는 방안이 수도권 공급대책 때 검토되기도 했지만, 당시 골프장을 소유하고 있는 군의 반대에 부딪쳐 추진이 무산됐다. 

현재 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자리에 있던 관악 컨트리클럽도 경기도 화성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국은 정치권에 휘둘려 골프장이 외곽지역으로 내몰린다. 골프장의 전통과 역사는 무시된다.

한국은 청량리, 효창공원, 용산에도 골프장이 있었지만 세월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 올드코스 사진=홈페이지

그래서 스코틀랜드가 여간 부럽지가 않다. 세인트 앤드루스 링크스 올드코스는 수백년이 흘렀어도 여전히 '골프성지(聖地)'로 남아 있다. 디오픈이 열리는 골프장들은 스코틀랜드시가 관리하면서 전 세계의 아마추어 골퍼들을 불러들여 자국 홍보도 하고, 관광수입도 올리면서 '골프원조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1552년 22홀 규모였다가 1764년 18홀로 리뉴얼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15세기 초만 해도 전, 후반 9개 홀이 나란히 서서 페어웨이와 그린을 공유했다. 왕복하면서 라운드를 한 것이다. 영국은 전 세계에 골프를 널리 퍼트리며 세계골프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했지만, 이런 골프의 뿌리는 스코틀랜드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없애는 것은 쉽다. 하지만 역사를 만드는 것은 수백, 수천년이 걸린다. 그린벨트는 더욱 그러하다. 주택을 늘리겠다고 그동안 온갖 정성으로 아름답게 가꾼 골프장을 막무가내로 깨부술 생각만 하는 일부 정치인과 관료들. 차라리 골프장을 그대로 살려 사모펀트나 대기업에 매각해 민간 골프장으로 유지해 그린벨트를 훼손하지 않고, 매각대금으로 대체부지를 마련해 주택을 짓는 것이 후손을 위한 100년 대계가 아닐까. 골프코스 곳곳에 프리미엄급 별장을 지어 전 세계 하이소사이어티그룹이나 동남아시아 부호들에게 매각해 그 대금으로 주택부지와 건설비를 마련할 수도 있다.

외국 국빈이 왔을 때 태릉 골프장 같은 유서깊은 곳에서 라운드를 하면서 외교를 하는 한국 대통령은 언제쯤 나올까. 희망은 있는 걸까. 요원한 일임을 알면서 답답해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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