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라이프]"골프요? 욕심이 화를 부르죠"...320야드 날린 박용운 엔티엘 대표이사
[골프&라이프]"골프요? 욕심이 화를 부르죠"...320야드 날린 박용운 엔티엘 대표이사
  • 안성찬 골프대기자
  • 승인 2019.12.22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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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CC에서 3언더파 69타를 기록한 박용운 엔티엘 대표이사
한원CC에서 3언더파 69타를 기록한 박용운 엔티엘 대표이사

“골프는 겸손, 그 자체입니다. 욕심을 부리면 화를 불러요. 과욕이 죄를 낳은 셈이죠. 이는 기업도 비슷합니다. 자신에게 맞는 크기의 기업을 운영하면 무리가 없습니다. 욕심을 내다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합니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으면 불편하기 때문이죠.”

골프와 기업의 닮은 점에 대해 ‘터무니없는 욕심이 화를 부른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다는 박용운(53) 엔티엘 대표이사. 

박 대표는 ‘빈손’으로 시작해 강소기업을 일으킨 입지전적인 기업인이다. 그가 비록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주변에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한번 시작하면 죽기 살기로 덤벼 끝장을 보는 성격 탓이다.   

어릴 때 눈물겨운 시절을 보냈다. 고향이 강원 평창이다. 지금이야 동계올림픽을 치러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냥 ‘깡 시골’이었다. 3남2녀 중 넷째였다. 중학교 때 부친이 세상을 달리했다. ‘생계’를 위해 중학교를 마치고 경기도 성남으로 상경해 직업훈련소에 들어갔다. 이때만 해도 ‘먹고사는 것’이 급선무였으니까. 이때 기계 기술을 익힌 것이 ‘현재의 박용운 대표’를 만들어 줄은 꿈에도 몰랐을 터. 1983년 공구 및 정밀가공 중소기업이 몰려 있는 영등포구 문래동의 압출금형을 제작하는 창성정밀에 첫 직장을 잡았다. 쪽방에서 기숙했다. 손발이 꽁꽁 얼어붙는 엄동설한에는 연탄난로에 물을 데워 세수를 해야만 했다.

14년만에 강소기업을 키운 박용운 엔티엘 대표이사
14년만에 강소기업을 키운 박용운 엔티엘 대표이사

“첫 월급이요? 13만원이었습니다. 한 달 밥값만 4만8000원이었죠. 한 끼에 800원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첫 월급은 형수와 형님에게 선물을 사서 우편으로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음달부터는 무조건 7만8000원씩 저축했고요. 용돈은 고작 4000원이었습니다. 야근 수당은 없었지만 저녁밥을 공짜로 주니까 주로 야근을 했죠.”  

이후에 그는 고만고만한 회사를 두루 경험했다. 그러다가 기업을 직접경영 하려면 더 많은 지식과 경영수업이 필요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1984년 한국폴리텍대학을 졸업했다. 

“공부를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배울게 많다는 것을 실감했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기술부터 배웠기 때문에 기계나 금속공학을 전공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실전을 먼저 했기 때문에 그만큼 이론이 더 쉬웠던 것이죠.”
대학을 졸업하면서 언젠가는 독립해 사업을 하겠다는 결심이 서자 기술뿐 아니라 비록 큰 기업을 아니더라도 대표들의 경영기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물론 그가 근무하는 곳은 대개 공장이었지만 틈만 나면 임원진들에게 기업경영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보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다. 

그는 금속가공 엔지니어답게 30대 초반에 중소기업에서 부장을 달았다. 3년간 일하면서 그저 그런 회사 매출액을 40억 원대로 올려놓고 퇴사했다. 이유는 대표이사가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않은 탓이다. 직장생활에 회의가 들었다. 독립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2003년 직원 7명을 뽑아 엔티엘 회사를 창업했다. 업종은 반도체나 완제품에 들어가는 금속부품을 정밀 가공해 대기업에 납품하는 것이었다. 첫해 매출 7억9000만원을 올렸다. 해마다 매출이 급증했다. 그런데 그도 실수를 했다. 2006년 처음으로 적자를 봤다. 이유는 ‘한눈을 판’것이었다. 2005년 현재의 공장 건물을 구입해 놓고 여유가 생기면서 공장장에게 맡겨 골프에 빠진 것이다. 

티샷을 하기전 포즈를 취한 박용운 대표이사

아차 싶었다. 공장장에게 믿고 맡겼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공장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은 역시 기업주가 신경을 써야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소중한 계기가 됐다.

그런 뒤 다시 매출이 상승하며 60억 원까지 육박했다. 엔티엘은 재미있는 회사다. 임원이 없다. 현장과 사무실에 각각 한명씩 2명의 부장만이 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 살자’는 단순한 경영철학으로 모두 즐겁게 일하며 함께 살아가는 가족 같은 회사로 만들었다. 직원은 35명이지만 모두 정밀가공의 전문가여서 지금은 어려움이 없다. 

“제조업이 살아나야 한국기업이 건강해집니다. 그런데 갈수록 전문엔지니어를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도심과 멀리 떨어진 화성까지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죠. 게다가 물가는 상승하는데 중소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제조단가가 하루가 다르게 하락하고 있어 기업생존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중소기업을 살리는데 특단의 정책이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168cm, 74kg의 그리 크지 않은 체격에도 드라이버 거리를 320야드까지 날려봤다. 강점은 팔이 강하다. 직업특성상 기계를 다루다보니 팔 힘이 강해졌던 것. 직원들과 팔씨름을 해서 져 본적이 거의 없다. 

박용운 대표이사
박용운 대표이사

장타 덕으로 머리 올리러 간 코리아 컨트리클럽에서 95타를 쳤다. 2년만인 2007년 3월 한원 컨트리클럽에서 78타로 첫 싱글 스코어를 기록했다. 같은 해 한 달 뒤 청룡 컨트리클럽 7번홀(파4)에서 7번 아이언으로 첫 이글을 잡았다. 그의 최고 기록은 2014년 6월25일 한원CC에서 달성한 3언더파 69타. 그런데 이날 전반에 32개를 치고 후반 15번홀 까지 6언더파였다. 욕심 탓이었을까. 16번홀(파3)에서 더블보기를 한 뒤 17번홀(파5)에서 보기를 하면서 아쉽게 타수를 잃은 것이다.

“언더파를 치고 나갈 때 그냥 파만 잡으면 됐는데, 욕심을 조금 부린 것이 게임을 망친 것이죠. 1타를 더 줄여 보려고 하다가 숫자를 늘린 셈이 됐습니다. 문제는 전 홀에서 잃은 점수를 만회하려고 하다가 결국 또 1타를 손해 봤죠. 마음을 비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골프나 사업이나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더 좋은 스코어, 더 나은 성과를 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박용운 대표도 이루고 싶은 욕심이 있다. 바로 클럽챔피언이다. 그가 한원 컨트리클럽의 챔피언이 언제쯤 될는지 궁금하다. 화성(경기)=안성찬 골프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