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e-Hot Issue]"'치명타' 입은 잔디, 반드시 살려야죠"...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심규열 박사
[[White-Hot Issue]"'치명타' 입은 잔디, 반드시 살려야죠"...한국잔디연구소 소장 심규열 박사
  • 안성찬 골프대기자
  • 승인 2024.09.22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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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규열 박사가 골프장 그린키퍼와 잔디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사진=골프Inc

올 여름은 유난히 폭우와 폭염에 시달리면서 골프장 잔디에게는 흑역사(黑歷史)로 남는 한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니, 아직 진행형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골프장을 다녀온 골퍼들은 이구동성으로 “잔디가 왜 이래?”하고 불쾌감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9월 하순으로 접어들면서 기온이 조금 내려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잔디는 갑작스러운 강우와 여전히 더운 날씨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골프장들은 비상이 걸린 가운데 눈코뜰새 없이 바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들이 있다. 바로 한국골프장경영협회 부설 한국잔디연구소(KTRI) 8명의 임직원들이다. 특히, 소장 심규열 박사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잔디와의 전쟁'을 벌이는 회원사 골프장을 연구원들과 함께 찾아 다녔다. 심규열 박사를 만나 잔디 피해와 그 대책, 그리고 가을 및 겨울을 대비한 잔디관리에 대해서 들어봤다. [편집자주]

Q: 일부 골프장들이 심각하게 망가진 잔디로 인해 골퍼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자연재해(自然災害)인가, 아니면 인재(人災)인가.

A: 올해는 예측하기 쉽지 않은 예기치 않은 홍수 및 가뭄이기 길어졌기 때문에 자연재해라고 보아야 한다. 올 여름 기상은 엘리뇨에서 라니냐로 바뀜에 따라 또 다른 양상을 보이며 코스관리에 새로운 형태의 문제들을 일으켰다. 올 여름 장마는 주로 국지성 폭우 형태로 주로 중부 이북지역에 물폭탄을 쏟아냈다. 반면에 남부지방은 7월 중순까지 장마가 이어지다가 이후 폭염과 함께 약 1개월 이상 가뭄현상이 발생했다. 특히, 8월 중 33℃이상의 폭염일수가 약 약 20일 정도 이어지고 밤에도 열대야 현상과 극심한 가뭄현상이 한지형 잔디인 벤트그래스와 켄터키블루그래스에 치명타를 안겼다. 

Q: 기후 변화가 이렇게 잔디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나.

A: 그렇다. 잔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은 온도, 강우, 일조량이다. 이들 3요인이 극한 상황이 되었을 때, 잔디에 다양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극심한 고온일 경우에는 고온장해, 이상 저온일 경우 동해(凍害) 혹은 냉해(冷害)가 발생한다. 강우는 폭우나 혹은 장마기간이 길어지면 한지형 잔디의 뿌리 생육이 감소돼 습윤위조현상(濕潤萎凋現象), 병발생 증가 등의 문제가 심각해 진다. 가뭄이 심하면 잔디의 불청객인 드라이 스팟(dry spot)과 페어리링(fairy ring, 균륜), 그리고 내병성(耐病性) 감소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일조량이 부족하면 광합성 감소로 생육쇠퇴 및 내병성 감소 등에 의한 장해가 잔디생장에는 치명적일 것이다. 예를 들어 고온과 과습이 동반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하고현상 즉 생리적 고사현상이 심화되고 피해는 배(倍)가 된다는 얘기다.

그린 피해.
그린 피해. 사진=한국잔디연구소

Q: 올해는 유독 예년과 달리 드라이 스팟이나 페어리링이 나타났는데.

A: 올 여름은 특이하게도 그린의 벤트그래스의 경우에 '드라이 스팟'과 '페어리 링'이 크게 발생했다. 보통 페어리 링은 그린에서 문제가 되지 않는 병이다. 하지만 올해는 기상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발생을 보였다. 특히, 갱신작업을 못해 대취(thatch)가 많이 축적된 경우나 6월~7월 페어리링 발생 초기에 지속적인 방제가 되지 않은 후 큰 피해를 입었다. 발생 원인은 기상의 영향이 매우 크다. 8월 폭염과 가뭄이 거의 1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페어리 링의 병징 발현이 배가하게 된 것이다. 티잉구역, 그린칼라 지역에 식재된 켄터키블루그래스는 벤트그래스에 비해 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장마기의 습윤위조현상 뿐만아니라 서머패취의 발생이 폭발적이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니 이젠 한지형잔디로 여름을 나기 어렵다는 판단에 많은 한지형 잔디 골프장이 난지형 잔디로 교체하고 있다. 최근 한지형 잔디를 난지형 잔디(한국잔디, 버뮤다그래스)로 교체한 골프장이 대략 30여 개에 달한다.

Q: 여름철에는 한지형 잔디가 난지형 잔디보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무엇인가.

A: 기후변화의 영향은 여름철에 한지형 잔디에 가장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고온, 과습 스트레스로 여름철에 생장이 쇠퇴하거나 정지하고, 심하면 황화, 고사(枯死)하는 하고현상(夏枯現象)의 원인은 대부분 생리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먼저, 고온 상황에서 광합성의 감소와 호흡량의 증가해 영양분의 고갈된다. 이어 장마와 폭우 상황에서 과습, 침수 등에 따른 뿌리의 수분 및 양분의 흡수 장애와 뿌리 쇠퇴에 따른 시토키닌의 감소로 세포분열 감소와 잎의 노화가 가속화된다. 특히. 이런 요인들이 복함적으로 동시에 발생하면 잔디 생육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심규열 박사. 사진=골프Inc
심규열 박사. 사진=골프Inc

■올해는 극심한 잔디 피해는 폭우와 폭염, 그리고 극심한 가뭄이 주범 

심규열 박사는 '잔디가 곧 인생'일 정도로 한국잔디사와 그 '궤(軌)'를 함께 하고 있다. 한국잔디연구소가 발족한 것은 1989년 3월이니 올해로 35년이나 '잔디 외길 인생'을 걸어온 셈이다. 잔디연구소는 골프장 코스의 품질 향상과 한국의 골프 산업 발전에 기여해 온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잔디 전문 기관이다. 과학적인 진단과 처방, 종합 검진을 통해 코스의 질병 치료와 예방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잔디연구소는 심규열 소장의 지휘하에 한국 잔디 산업은 나날히 발전하고 있다. 

그가 잔디에 빠져든 이유가 궁금하다. 그에게 충격을 안겨 준 사건이 있다. 80년대 후반 우연히 접하게 된 미국의 잔디 산업 규모다. 당시 한국의 1년 예산과 미국의 잔디 산업 1년 예산이 연 70조로 비슷했던 것에 놀랐다. 특히, 미국의 잔디 면적은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약 22만㎢ 정도였다. 이때 '잔디가 미래산업'이라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를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이 비켜갈 수 없는 운명이 될 줄이야. 잔디연구소 설립 소식을 듣게 된 그는 입사에 이르러 지금까지 한배를 타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잔디맨', '터프맨(Turf Man)'으로 불린다. 자신의 성을 따서 잔디와 묶어 '터프심'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그는 “국내에서는 황무지인 잔디에 '올인'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면서 “돌이켜 보면 무모한 도전 같았는데, 불모지였던 국내 잔디 산업을 정착시키는 데 일조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Q: 벤트그래스 그린의 드라이 스팟(건조피해)을 입었다면.

A: 손상이 심한 지역은 보식을 실시하는데, 평탄성 유지가 관건이다. 보식후 배토와 롤링, 관수는 필수다. 잔디개체가 40% 이상 존재하면 밀도형성을 위해 보완적으로 파종한다. 올해는 호남지역에 유독 가뭄이 심해 드라이 스팟과 페어리 링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그린의 마름현상이 조장되고, 대취가 축적돼 잔디가 많이 상한 것이다. 페어리 링은 조기 예방관리가 중요하다. 대개 5월 하순부터 초기 증상이 나타나므로 6, 7월에 집중적인 예방관리를 해줘야 한다. 드라이 스팟은 사실 여름전에 충분히 밀도를 유지하고, 조직을 강화하고, 시린징 관수를 하면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Q: 티잉 구역에 습윤위조현상이 심하던데.

A: 그린과 마찬가지로 손상이 심한 지역은 보식과 파종이 필요하다. 보식은 하절기에 강한 품종인 HGT 켄터키 블루그래스가 좋다. 잔디개체가 40% 이상 존재하면 파종하는데, 퍼레니얼 라이그래스와 켄터키 블루그래스를 혼합해서 한다. 답압(踏壓)이나 서머패치, 과습에 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HGT 켄터키블루그래스를 추천한다. 뿌리 생육이 왕성하고, 서머패치와 답압에 강하며, 과습조건에서도 잘 견디는 특성이 있다. 

Q: 피해 잔디 복구와 함께 가을과 겨울을 잘 나기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A: 한지형 잔디는 기온이 선선해지면 생육회복기를 맞는다. 잔디 지상부 최적의 생육 온도는 16~25도, 근부는 10~18도다. 회복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린은 예고조정과 시비, 잔디병해충을 위한 예방시약, 통기작업, 드라이 스팟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드라이 스팟은 뿌리가 짧아진 상태로 건조가 심화되면 시린징을 한다. 이때 과습은 금물이다. 생육이 불량한 지역에는 보식이나 인터시딩을 해야 하고, 티잉구역은 액비로 시비를 한다. 특히, 서머패치 방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손상이 심한 지역은 서둘러 보식을 하고, 밀도가 낮은 지역은 오버시딩이 좋다.  

Q: 난지형 잔디인 한국잔디는 관리는 무엇이 필요한가.

A: 난지형 잔디인 한국잔디는 영양분 축적기이다. 한지형 보다는 잔디 피해와 손상에 덜 됐더라도 관리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티잉 구역은 생육촉진을 위한 시비와 배토를 실시한다. 페어웨이는 마지막 시비로 녹색기간을 연장한다. 가을에 찾아오는 라지패치 방제를 위해 시약을 2회 이상 실시한다. 상습적인 동해 발생지역은 배토를 비교적 두껍게 해서 관부 레벨을 낮춘다. 밀도 유지와 동해 내성 강화를 위해 시비가 필요하다.

■가을과 겨울을 잘 나기위해 9월 집중적 코스관리가 필요

잔디연구소는 코스관리를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화를 위해 신기술 개발을 비롯한 연구 사업, 코스 진단 및 컨설팅 등의 지원 사업,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교육 사업, 그리고 자료 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력사업으로는 코스관리 현안을 둘러싼 실증 연구 및 실질적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골프코스 난제들을 주제로 연구는 물론 해법을 찾아 코스관리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또한, 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방문하는가 하면 시료를 분석하거나, 현장의 사진들을 실시간으로 받아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임상진단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올해 처럼 이상 기후에 따른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발걸음이 바빠진다.

잔디연구소는 코스관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 제공과 코스 관리자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 정보 자료집 발간 및 전문 교육을 실시한다. 코스관리 정보지, 코스관리를 월별로 담은 캘린더, 연구 연보 등을 발간하고 있다. 코스관리 정보 디지털화 사업의 일환으로 그동안 축적된 연구 데이터와 관리 정보 등의 빅데이터를 디지털화해 골프장에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있다. 무엇보다 골프코스 종합검진제를 통해 365일 건강한 코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연구소가 할일이다. 객관적인 코스평가를 위해 연구소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종합검진제는 코스관리상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예방하기 위한 최선의 코스 평가 프로그램이다. 

그는 “코스도 사람과 같이 건강 검진을 통한 유지 관리가 필요하다”며 “연구소의 전문 연구원들이 현장 출장을 통해 코스를 점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잔디, 병해충, 토양, 비료, 농약, 환경, 조경, 수목, 잡초 등 각 분야별 전문 연구원이 '코스 닥터'라는 얘기다. 잔디의 생육 상태 및 병해충 발생 여부와 토양 물리성 상태를 점검 후 다양한 평가 결과들을 분석, 코스의 문제점을 도출해 내면 보다 품질 좋은 코스 유지를 위한 해결책을 보다 정확하게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라싸CC.
라싸CC.

그는 골프코스의 생명은 잔디라는 것에 확신을 갖고 있다. 잔디가 상품이라는 것. 철저하게 잘 관리된 코스 품질은 골프장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골프장에 보다 많은 수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코스 관리자의 코스관리 능력이 골프장의 가치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골프장에서 고려돼야 할 최상의 잔디 관리 상태에 대해 “골프코스 구성 요소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잘 관리된 상태”라며 “페어웨이에서는 볼이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잔디면 위에 잘 올려져 있어야 한다. 그린에서는 어프로치 샷을 했을 때 그린이 볼을 적절하게 받아줘야 하고 그린스피드는 속도보다 균일성이 더 중요하다. 티잉 구역에서는 평탄성이 핵심이다.” 절대적인 잔디의 품질 향상보다 목적과 상황에 따른 관리가 이루어졌을 때, 코스는 잘 맞는 잔디 옷을 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는 “골프장의 숨은 능력자는 바로 '그린키퍼'”라고 말한다. 

“그린키퍼의 역할은 일반적인 잔디 관리는 기본이고, 잔디 상태를 고려해 코스를 열지, 닫을 것인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골프장 간 경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면서 코스 관리자들의 역할은 그 어느때보다 중요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잔디연구소는 코스관리전문가를 양성하는 ‘코스관리 분야의 사관 학교’인 셈이다. 코스관리전문가 교육과정으로 1년 동안 커리큘럼은 골프장 관리에 필요한 이론 및 실습을 병행한다. 다년간의 실무와 풍부한 자문 경력을 갖춘 잔디연구소의 연구원들이 직접 전공별 교육을 담당해 교육한다. 

교육을 마친 졸업생은 바로 골프장 현장에 투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입학 전에 골프장 경험이 없던 사회 초년생도 어려움 없이 취업해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것이 잔디연구소 프로그램의 강점이다. 

심규열 박사는 골프장 잔디관리 전반을 다루는 ‘골프코스관리학’을 교육하고 있다. 국내외 골프장에 식재된 잔디의 종류별 ‘생리 및 생태학’, 잔디 품질과 직접 연관된 ‘잔디병리학’, ‘잔디해충학’, ‘잡초학’, 건강한 잔디를 재배하기 위해 필요한 ‘토양학’ 및 ‘비료학’, 경관미를 더해 주는 ‘조경 및 수목관리학’ 등 과목을 각 전공별 연구원들이 담당해 교육하고 있다. 

심 박사는 잔디에 관한한 '진심'이다. 2002 한일월드컵 때는 월드컵축구조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선수들이 경기력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최적의 잔디 컨디션을 조성하는 일에 정열을 쏟았다. 2012년 한국잔디학회 회장을 역임할 당시엔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친환경적 시설을 보급하기위해 천연 잔디가 깔린 학교 운동장을 조성하는 등 잔디 보급에 전력을 기울였다. 

“잔디의 특별한 마력(魔力)때문에 잔디에 애착을 갖게 된다”는 그는 갖고 있는 잔디 매력을 무엇일까.  

“잔디는 초와 같다. 초는 자신을 태워 불을 밝히듯 잔디도 비슷하다. 자신을 희생해 우리 인간에게 아름답고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준다.  특히, 잔디는 지구를 살린다. 생태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기후변화에 완충작용을 한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에도 기여한다. 대기중에 산소를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대기를 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토양유실 및 홍수도 방지해 토양 안정화를 꾀한다. 지하수 오염를 비롯해 소음 및 부상방지, 온도조절, 먼지 발생 감소, 복사열 저감 기능도 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현대인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잔디는 우리에게 무한한 혜택을 주고 있다.”

평생 잔디연구에 정성을 기울이고 있는 심규열 박사의 '잔디 예찬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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