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라이프]"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은 것이죠"...조희균 JMSH 회장
[골프&라이프]"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은 것이죠"...조희균 JMSH 회장
  • 안성찬 골프대기자
  • 승인 2019.02.2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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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부동산으로 자산모아 괌에서 골프&리조트 건설로 자리매김
조희균 JMSH 회장
조희균 JMSH 회장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을 기대할 수가 없죠. 특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파악한 뒤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설계도면 없이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처럼 인생설계도 마찬가지가 않을까요?”

운동권 학생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조희균 JMSH 회장은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인이다. 조 회장은 괌과 로타에 골프장과 호텔을 소유한 부동산 재벌이다. 그는 괌에 비치타워, 호텔, 빌라, 로타에 호텔과 18홀 명문 골프장을 갖고 있다.

아들과 손발을 맞춰 경영일선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조 회장은 “기업도 하나의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애정을 쏟아 부어야 인간관계가 좋아지듯 기업도 마찬가지죠. 사실 중소기업은 쌓아 올리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입니다. 조금만 한눈을 팔면 바로 표시가 나는 것이 중소기업이죠”라며 “그런 점에서 기업은 항상 변화하는 하나의 ‘생명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운동권 학생에서 사업가로 변신 했을까. 시대상황이 그를 캠퍼스보다는 민주주의 대한 열망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했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제대 후 미국행을 결심한다. 결혼한 뒤 ‘큰물에서 놀자’고 마음을 굳힌 그는 아내에게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동시통역사였던 아내는 바로 ‘OK’였다. 한국에서 머물면 운동권 학생은 다시 노동운동으로 발을 들여놓기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고리를 끊는데 이민이 적격이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6개월을 준비한 끝에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피자배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다가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알면 무엇을 하든지 일이 쉬워질 것을 계산에 넣고 ‘무대포 정신’으로 택시를 몰았다. 이것이 그의 인생에 변환점이 됐다. 사실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의 지리도 잘 모르면서 차를 몰고 다닌 것이다. 재미난 것은 캘리포니아주의 지리도 전혀 알지 못하면서 택시 필기시험에서 1등을 했다는 것이다.

근무한 운수회사가 콜택시 개념이라 본사에서 오는 콜을 받고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거리도, 가야할 곳의 위치도 모르면서 무조건 콜부터 받았다. 그런 뒤 지도를 펴놓고 위치를 찾았다. 그러니 남들보다 늦게 도착하기 일쑤였다. 본사에 고객들의 항의도 빗발쳤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는 일이었죠. 어떻게 지리도 모르면서 택시기사를 했는지...1년이 지난 어느 날 사장이 불렀어요. 왜 그렇게 매번 손님에게 늦게 가느냐고 물었지요. 그래서 솔직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시내 지리를 잘 모른다고. 사장이 의아해하면 한참을 쳐다보는 것이었어요. 물론 저도 별로 할 얘기가 없었고요. 웃으면서 처분만 기다렸죠.”

그러고도 그는 8개월이나 더 차를 몰았다. 이것은 그에게 훗날 둘도 없는 값진 경험으로 돌아왔다.    

“세계 어디를 가든지 그 지역의 길(도로)을 알면 그 나라 문화를 바로 알 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미국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택시기사를 한 덕분이라고 할 수 있죠.”  

홀리데이 리조트

LA부터 인근지역을 지리를 눈감고도 알 정도가 되자 그는 다시 부동산에 도전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현 미국대통령이 롤 모델이었다. 자신감이 붙자 그는 부동산이 돈을 벌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을 확신이 서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든 것이다. 

“일단 내가 활동하는 지역과 문화를 알자 자신이 생겼어요. 트럼프를 흉내 냈다고 하면 맞지 않을까 싶네요. 트럼프는 남달랐습니다. 그가 부동산에 접근한 방법은 바로 ‘백지설계’죠. 남들과는 전혀 다른 기발한 아이디어로 부동산 매매를 시작해 성공신화를 이룬 겁니다. 저도 따라서 했죠. 그때만 해도 미국은 네트워크가 잘 돼 있어 조금만 머리를 쓰고, 부지런하면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가 왕성하게 활동할 당시 캘리포니아에는 공인중개인이 50여 만 명이나 됐다. 그런데 트럼프가 7번이나 인터뷰한 부동산전문지에 그도 4년 만에 등단했다. 1년에 고작 12명밖에 안되니까 엄청난 행운이었다. 물론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한 덕이었다. 특히 택시기사를 하면서 파악했던 지역의 모든 주택들을 손바닥에 놓고 보듯 했기에 부동산 중개는 날개를 달았던 것이다. 

“저는 집을 함부로 소개하지 않았죠. 내가 정말 살고 싶다고 느끼는 집만 골라서 중개를 한 것입니다. 한번은 매물로 나온 집을 보고나서 1시간30분이나 걸려 집에 갔다가 다시 그 집을 찾은 적도 있어요. 가슴이 ‘쿵쾅쿵쾅’ 뛸 정도여서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차를 돌려 가본 것입니다.” 

준비하면 기회는 오는가. 중동투자자가 그를 찾았다.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주택을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중동투자자는 국제 컨퍼런스를 하듯 대회의실에서 회의를 하자고 그에게 제안했다. 그런데 회의장에 들어서자 깜짝 놀란 것이 있다. 그를 의장석에 앉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투자자는 주택건설에 관한 질문을 퍼부었다. 그는 바로 제안했다. 주택 한가운데에 수영장과 레저시설을 갖추자고 했다. 그러자 돌아온 질문은 아시아인들이 수영을 즐기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아니요(NO)'라고 답했다. 그런데 왜 수영장이 필요 하느냐고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단순한 주택만 갖고는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입주자가 거주하는 곳에 프리미엄의 가치를 느끼게끔 하면 주택분양이 순조로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이 잘 맞아 떨어졌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그 바닥에서 ‘부동산의 귀재’, 부동산의 신(神)‘으로 불렸다.

일이 잘 풀리면서 결과는 ‘부(富)축적’으로 나타났다. 무려 900개가 넘는 아파트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로타 컨트리클럽

괌에 정착하게 된 것은 우연이다. 잠시 휴식 차 괌을 찾은 그는 미래를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소유했던 부동산을 정리해 괌의 골프장과 리조트를 6개나 인수했다. 2개는 매각해 현재 로타 리조트& 컨트리클럽, 가든빌라 호텔, 알루팡 비치타워, 홀리데이 리조트 괌을 운영 중이다. 그런데 회사명이 재미있다. JMSH는 큰딸과 아내, 작은 아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의 첫 영문이니셜을 따서 회사명을 지었다. 

“골프, 호텔, 리조트같은 서비스업은 고객의 눈높이에 맞춰 운영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최대한 고객에게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도록 하죠. 이를 위해 직원들의 서비스 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의 복지혜택은 필수요건입니다. 결국 고객을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직원이 잘 돼야 고객들이 만족하고, 기업도 덩달아 발전하게 됩니다.”     

그는 골프와도 인연이 깊다. LA 도심 한가운데에서 78타석의 드라이빙 레인지도 건설해 운영했다. 시립학교의 ‘금싸라기’ 부지에 골프연습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 들자 학교법인을 찾아가 부지 임대를 받았다.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만한 조건을 내걸었다. 바로 ‘범죄추방’이었다. 학교인근이었지만 밤에는 인적이 뜸하고 어두컴컴한 우범지대였다. 이것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길로 만드는 것이었다. 500만 달러를 들여 건설했다. 그럼에도 골프연습장의 월 임대료는 겨우 5000달러밖에 되지 않았다.  

“범죄추방요? 간단하잖아요. 골프를 연습하는 오는 손님이 늘면 자연스럽게 많은 차가 오고갈 테고, 이런 곳에서 누가 범죄를 저지르겠어요. 30년 임대했지만 3년 만에 학교 측에 매각했습니다. 학교 측이 원했기에 2700만 달러를 받았죠. 

저신이 운영하는 홀리데이 리조트의 한식레스토랑 서울정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조희균 회장

그는 비상한 머리만큼 골프도 수준급이다. 연습장을 운영하다보니 프로들과 필드를 자주 나가게 됐다. 그들이 플레이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며 따라서 했다. 이것이 습관이 되자 스코어는 저절로 줄어들었다. 베스트 스코어는 3언더파 69타. 한창 골프를 할 때는 드라이브 거리가 평균 270야드나 나갔다. 쇼트게임도 달인이었다. 18홀을 도는 동안 버디 5~6개는 기본으로 했다. 하루는 15번 홀까지 버디만 6개 골라내며 6언더파로 ‘그분이 오신 날’인줄 알았다. 동반 라운드를 하던 프로가 “회장님 오늘은 8언더파는 치시겠는데요”라고 한 것. 혹시 자신의 대기록을 세우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아니나 다를까. 긴장한 탓인지 16번 홀에서 시원하게(?) 아웃 오브 바운스(OB)를 내며 더블보기, 17번 홀에서 보기, 마지막 18번 홀에서 파로 막아 3언더파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 파5홀에서 아쉽게 앨버트로스도 놓친 일도 있다. 2온을 시켰는데 홀로 굴러가던 볼이 앞 팀에서 퍼트하던 골퍼 발에 맞으면서 홀을 벗어났다. 

호기심과 승부욕이 강한 그는 코스 한곳을 정하면 디자인과 코스공략이 될 때까지 계속 돈다. 여러 곳을 찾아가는 골퍼와 조금 다르다. 특히 핀과 2m 정도 오른쪽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왼쪽 1m에 붙어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 그의 골프생각이다. 계획이 빗나간 탓이다.

학창시절 작가지망생으로 소설습작도 했던 그는 외모와 달리 박학다식하고 달변(達辯)이다.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의 그와 대화를 나누다보면 어디서 저런 지식과 지혜가 나올까하고 놀라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그는 하루에 3시간은 무조건 신문을 탐독한다. 국내외 신문 15개를 골라 경제와 정치면을 정독한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 및 정치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침 운동전후에 신문을 모조리 읽습니다. 그것이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요. 세계동향을 알면 제가 앞으로 할 사업 게획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미래구상이나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의 아이디어를 모두 신문에서 얻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만사 제쳐두고 신문읽기는 멈추지 않는 거죠.”

기회가 되면 ‘소설을 쓰고 싶다’는 조희균 회장이 작가의 소망이 언제쯤 이뤄질는지 궁금하다. [괌=안성찬 골프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