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견문록&28]그린과 잔디, 그리고 최악의 가뭄
[골프견문록&28]그린과 잔디, 그리고 최악의 가뭄
  • 안성찬 골프대기자
  • 승인 2022.06.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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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가뭄으로 골프장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오랜 가뭄으로 골프장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골프장들이 오랜 가뭄으로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그린피를 올려도 입장객이 넘쳐나니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지듯 골프장 업주와 그린키퍼는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그린의 잔디가 말라가고, 아예 흙바닥을 드러낸 곳인 골프장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골프장의 그린이나 페어웨이가 형편없어도 일부 골프장의 그린피는 여전히 고공행진이다. 주중에 10만원대의 그린피는 20만대를 넘어서고 있다. 울고 싶은 골퍼는 "이 기회에 아예 골프코스가 다 망가졌으면 좋겠다"고 악담을 쏟아내기도 한다. 

▶잔디는 생물이다. 지난 겨울 과잉 영업과 이상 기후로 코스 상태가 엉망일수 밖에 없다. 가뭄과 함께 골프장이 늘어나면서 코스관리 전문 직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한몫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로 골프장이 '천정지역'으로 인식되면서 피난처 역할을 했다. 이런 덕분으로 2020년에 골프장 입장객은 급증했다. 4673명이나 골프를 즐겼다. 이듬해는 한술더떴다. 5056만명이나 골프장을 다녀가 1000만명이나 증가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젖으라'는 말처럼 골프장은 앞다투어 그린피를 비롯해 각종 식음료값을 올리는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가뭄이 장기전으로 갈 경우 골프장의 앞날은 그리 밝지가 않다. 질 좋고 맛있는 음식이나 제품은 꾸준히 인기를 누리지만 제품이 맛이 없거나 형편없으면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기 때문이다. 골프장의 그린과 페어웨이가 망가지면 망가질수록 골프장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그린키퍼들은 그린키퍼들대로, 그리고 골퍼들은 골퍼들대로 불만이 쌓여갈 수 밖에 없다. 가뭄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역대급 가뭄임을 실감할 수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5월까지 6개월 간 강수량은 167.4㎜로 평년의 48.6% 수준에 그쳤다. 지난달 강수량은 평년의 6% 수준인 5.8㎜에 그쳤다. 기간을 넓혀봐도 최근 1년간 누적 강수량은 1052.4㎜로 평년의 78.7% 수준에 불과하다. 급기야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환경부, 기상청이 '6월 가뭄 예·경보'를 발표했다. 특히, 지난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강수량은 13.3㎜로 1973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적었다. 이는 평년(1991~2020년 30년 평균) 강수량 89.0㎜에 비해 14.7%에 불과했다. 강수일수도 11.7일로 평년(19.5일)보다 7.8일 적어 역대 최소를 기록했다.

물이 생명인 그린.
물이 생명인 그린.

▶비단 가뭄은 우리뿐 아니다. 미국 서부 라스베이거스는 1200년만에 최악의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네바다주, 애로조나주, 멕시코 등 인근주들은 아예 농사를 접었다. 오죽했으면 네바다 주는 관상용 잔디도 불법화하고 2027년까지 모두 철거하기로 했을까. LA시 역시 6월부터 야외 물 사용은 주 2회 이하로 제한했다. 스프링클러 가동은 8분만 허용하고 있을 정도다. 아프리카는 더 심각하다. 소말리아, 케냐, 에티오피아는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에 직면했다. 대부분 커피와 목축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은 물 부족으로 가축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소말리아에서 최근 1년 동안 가축 3마리 중 1마리가 폐사하면서 가뭄으로 생계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 세 나라에서만 무려 1700만 명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극심한 가뭄상황에도 골프장은 비축해 둔 물 덕분인지 일부 골프장이긴 하지만 잔디를 꽤 잘 보존하고 있다. 80년대 이후 건설된 골프장은 그나마 낫다. 관수시설이 잘돼 있고, 홀의 개념으로 워터해저드가 곳곳에 있어 급하면 이 물을 이용한다. 이전의 골프장들은 워터해조드가 아니라 위급할 때 쓰려고 티박스 인근에 서너개의 웅덩이를 파서 탕(湯)을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최근 건설된 골프장들은 코스관리를 관리하는데 조금 수월하다. 그린은 기본적으로 모래 기반으로 조성된다. 겨울철 바람 등으로 건조해지기 쉽고, 강수량이 적으면 건조피해가 발생한다. 역대급으로 낮은 강수량으로 그린이 건조피해를 입으면서 봄철 그린업이 불량해졌고, 이것이 6월까지 이어오고 있다. 입장객이 늘어난 만큼 관리가 더 힘들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결과다. 

▶잔디는 생장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생로병사를 겪는 것처럼 잔디도 마찬가지다. 국내 골프장에서 그린에 사용하는 잔디는 대개 벤트 그라스(bent grass)다. 그린이나 페어웨이가 가뭄에 타들어가거나 병으로 죽으면 잔디 씨를 뿌리거나 아예 뗏장으로 죽은 곳만 갈아치운다. 하지만 한꺼번에 그린이 고사하는 바람에 뗏장구입도 쉽지가 않다. 잔디종자도 수급난으로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일부 고프장은 아예 녹색 컬러를 들인 모래로 그린을 덮은 뒤 롤링을 해서 그린을 빠르게해서 골퍼들의 원성을 모면하기도 한다.  골프장이 당장의 호황에 근시안적 이익만 생각한다면 망가진 그린이나 페어웨이를 복구하기 불능상태에 빠질지 모른다. 가뭄 등 악조건속에서 예전 같은 비용과 자원, 시간으로 잔디 품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업과 코스질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창조적 경영능력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