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67.'핸드폰 때문에'-콩트(conte)
[안신영의 삶이 있는 풍경]67.'핸드폰 때문에'-콩트(conte)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2.02.18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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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때문에

눈이 부시도록 화창한 봄날은 영창씨의 기분을 두둥실 뜨게 했다. 더군다나 옆에 앉은 미스김의 늘씬한 다리는 영창씨의 기분을 더욱 들뜨게 하는 요소였다,

아 얼마만인가. 하루 24시간을 아내와 더불어 움직이는 꽃집에서의 답답함을 그 누구도 모르리라. 화환을 배달하거나 꽃바구니를 배달하러 가는 일 외에는 늘 마누라가 곁에 붙어서 쫑알대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신세인 것을. 주차를 함부로 시켜서 견인을 당했다고, 걸핏하면 접촉사고를 일으킨다고, 무슨 일이든 능력 있게 갈무리 못하고 쪽지까지 날아오게 해서 벌금을 물게 한다는 둥, 끊임없이 싫은 소리를 해대는 마누라를 떠나 봄날의 푸른 잎처럼 싱싱한 아가씨와 호젓한 길을 드라이브하게 되어 운전대를 잡은 영창 씨의 팔은 저절로 가볍게 돌아갔다.

''표로로로롱...'

"여보세요?"

"여보! 빨리 안 돌아오고 어디서 무얼 하는 거예요? 배달이 밀렸는데.

", 자동차가 밀려서 정신이 없어, 여기 삼거리 유명하잖아? 도로가 주차장이야, 주차장."

마누라의 대꾸도 들을 것 없이 미스 김의 무릎 위에 핸드폰을 얹어 놓고 랄랄라 휘파람을 불어대는 영창 씨의 얼굴은 오랜만에 웃음이 흘러넘친다. 꽃배달을 하고 돌아오는데 길에 서서 손을 흔드는 미스김을 태우고 영창 씨는 그대로 바닷가로 차를 빼어 달리고 말았다.

 미스김은 꽃집 근처 사무실의 경리 아가씨다. 꽃집에 자주 들려 꽃을 사들고 나가는 오동통하며 귀염성 있는 얼굴이 매력적이다. 아저씨, 아저씨를 불러대며 '커피 한잔 사세요하는 코맹맹이 소리는 영창씨의 귀에 은방울 굴러가는 소리로 들려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미스 김이 꽃을 사러 올 때마다 마누라의 흘기는 눈초리 따위는 무시하고 미스 김이 화원에 들리는 날은 기분이 두둥실 뜨는 것 같음을 느꼈다.

"어디까지 가세요카플(carpool)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근조화 배달하러 가는 길인데, 어디까지 가나? 태워 줄게."

차문을 열고 통통 튀는 공처럼 뛰어 올라오는 미스 김의 하얀 다리에 눈이 갔다. 자리에 앉아 활짝 웃는 미스 김이

"바쁘세요? 달맞이 고개에 벚꽃이 활짝 피었대요. 우리 놀러 가요."

순간 영창 씨의 얼굴은 보름달이 비추인 듯 환해지며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그래, 청사포에 가서 펄펄 뛰는 생선회라도 한 접시 먹고 돌아올까?"

교통 지옥 같은 시내 도로를 벗어나 바닷길로 접어드니 그동안 잊고 지냈던 바닷바람이 코끝에 확 스친다.

송정바다

수년 동안을 원양 어선의 항해사로 배 안에서 살았다. 배에서 내린 지 5년째가 된다. 단조로운 해상생활이 몸에 배어 있던 영창 씨는 육상에서의 생활은 복잡 미묘하고 어려웠다. 처음에는 떨어져 살던 가족들과 반가운 해후에 들떠서 지냈다. 날이 갈수록 저희들끼리 살아오던 습관 속에 아버지라는 인물은 이방인을 보는 것처럼 딸들은 어려워했다. 무슨 일이든 의논을 해도 엄마와 수군거리고 영창씨와는 대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 울툭불툭한 영창 씨의 성격으로는 고함이 쳐지고 손이 올라가는 일이 여러 차례 되었다. 사춘기의 감수성 예민한 딸년들은 아버지와 나긋나긋한 대면을 더 이상 하려 하지 않고 떨어져 살던 때를 은연중에 그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지 말자고, 다정한 아빠 노릇을 하려고 갖은 애정을 다 퍼부어 대지만 영창 씨가 없던 세월이 너무나 길었던 모양이었다.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처음에는 살을 맞대고 사는 일이 꿈만 같다며 좋아했다. 철 따라 장어를 고아 준다. 보약을 다려 준다 하며 몸 보양에 신경을 써가며 챙겨주더니, 이제는 찬밥 쳐다보듯이 돌아누워 드르렁드르렁 코를 먼저 골아 대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큰 아이가 고3이 되어 말로만 듣던 수험생의 집이 되고 보니 TV도 크게 틀지 말아라, 큰 소리로 말도 말아라, 발자국 소리도 크게 내지 말아라, 부부 관계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사설들을 늘어놓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원칙을  제멋대로 세워 놓고 지켜야 한다며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영창 씨의 기분은 점점 벌레 씹은 얼굴이 되어 갔다.

아내는 더욱 바빠져 아이들 보살피랴, 꽃 집 운영하랴, 영창 씨보다도 더욱 바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경험 없는 영창씨로서는 벌려 놓은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투자금을 손해보고 처분했다. 당분간 마누라가 경영하는 꽃집에서 배달을 하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을 하고 있는 터였다. 남편이라고 든든하게 맡아서 해줄 줄 알고 기대했던 마누라는 사사건건 영창 씨를 들볶았다.

얼마 전에는 친구 놈이 자식 놈 대학 들어갔다고 한턱낸다기에 부부동반으로 모여 저녁을 먹었다. 친구 놈이 낼 저녁 값을 영창 씨가 냈다고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쏘아대는 마누라. 동창회에 가서 기금을 남보다 더 냈다고 맨날 툴툴대었다. 아니, 남들보다 먼저 저녁값 내고, 기금 내는데 모교를 위해 아까울 것이 뭐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남들보다 더 내고 싶은 마음을 속 좁은 마누라는 바가지를 긁어 대며 싫어했다. 느긋하다고 좋아했던 영창 씨의 행동은 요즘에는 굼떠서 약속 시간에 맞추지 못해 창피하단다. 유료 주차장에 주차시키고 배달하라는 말을 안 듣고 견인 쪽지 날아온다고 잔소리, 사실 주차 요금이 보통 비싼가. 금방 일이 끝나니까 비싼 주차료 아끼기 위해 도로 옆에 차를 대 놓았다가 끌려가기를 수차례 한 것뿐인데.

송정

이제는 마누라가 직접 배달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영창 씨와 꽃집 일을 못하겠다고 다른 사람하고 일을 하는 것이 훨씬 편하겠다는 마누라의 원망 섞인 소리를 오늘 아침에도 들었다. 영창 씨도 당신같이 잔소리 해대는 여편네 하고는 한시도 같이 일을 못하겠다, 사람 구해라, 나는 취직을 해서 이곳을 나가겠다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이렇게 살려고 배에서 내린 것이 아닌데. 남들보다 더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아 보려고 배에서 내렸는데. 아직 한참 재미있고 신나게 살 나이에 아내와의 불협화음이 도대체 말이나 되는가.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는데 아이들과 아내 사이에서 물 위에 뜬 기름방울처럼 동동 떠다니고 있으니 내 성격에 결함이 있다는 말인가. 밉든 곱든 내 새끼이고, 아내인데 하루가 멀다 하고 으르렁대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울적하던 마음은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닷바람과 함께 날려가고 바닷물에 헤엄치는 물고기 마냥 싱싱한 미스 김의 조잘대는 코맹맹이는 즐거운 노랫소리 같았다.

"아저씨 너무 잘 생겼다. 아줌마는 참 좋겠다. 잘 생긴 아저씨랑 맨날 같이 있으니까."

핸드폰을 만지작 가리며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미스 김을 바라보며

"내 얼굴이 그렇게 잘 생겼어! 그래, 회를 먹을까? 아니면 여기 근사한 피자집도 있다고."

며칠 전 아내 생일에 달맞이 언덕 분위기 좋은 '언덕 위에 집'에서 호젓한 저녁을  보낸 일이 생각났다. 나이 어린 아가씨는 피자를 더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자요? 제가 피자 좋아하는 줄 어떻게 아셨죠? 아저씨 멋쟁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에 정신이 몽롱해진 영창 씨의 손이 미스 김의 손을 잡으려는 순간

'표로로로롱...'

"누구지? 하필 요럴 때 전화를 걸고 있어? 여보세요?"

"여봇! 거기가 개금 삼거리라고요? 누굴 놀려요? 미스 김 거기에 떨구어 놓고 빨리 돌아오지 못해요?피자회 한 접시? 많이 많이 분위기 찾아봐요?"

아까 아내와 통화하고 난 뒤에 두었던 핸드폰. 전화기가 미스김의 손장난에 send 버튼이 꺼지지 않고 계속 켜져 있을 줄이야!!

*옛 글을 옮기면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핸드폰에 요즘은 send 버튼이 없죠진화를 거듭해서 아마도 우리 애들조차 그런 폰 기억 못 할 것 같아요.

그 당시 모임 친구들과 바닷가로 회 먹으러 가는 길에 send 버튼 때문에 남편이 오해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반대로 써봤던 콩트였어요. (19977월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제 신문에 실렸던 글입니다.)

*photo by young.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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