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재촉하는 장대비에 등굣길, 출근길에 우산이 빼곡하다.
일정이 잡혀 먼 길을 떠난다. 후후, 먼 길이라니... 고양시 삼송마을에서 서울 송파구로 가는 길은 2시간 남짓 걸려서 먼 길이라고 지칭해본다. 그러나 송파에 가면 석촌 호숫길도 걸을 수 있고 백제 고분군이 있어서 마음은 즐겁다.
가끔 송파구 석촌동에 가게 되면 고분군에 들린다.
지난봄, 석촌동에 백제 고분군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석춘동 주민센터 가까운 곳에 한성백제 고분군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무덤도 돌무지였다는 것도 놀랍다.
3호분
석촌동에 가니 빗줄기는 가늘어졌으며 볼 일을 다 보고 나니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어 집으로 곧장 돌아오지 않고, 발길은 자연스레 고분군 입구로 향한다.
빗줄기가 약해져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거나 손에 들고 고분군을 돌며 산책하고 있다.
고분군의 입구 오른편에 고분군을 설명하는 입간판이 있어 옮겨 본다.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돌무지무덤이다. 1916년에는 90 여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되었으며, '석촌'이라는 마을 이름도 돌무지무덤이 많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덤은 없어지고 현재는 4기만 남아 있다. 이곳의 돌무지무덤은 외형에서는 고구려의 발달된 기단식 돌무지무덤과 같지만 내부 구조에서는 서로 다르다. 3호 돌무덤은 무덤의 안팎을 모두 돌로 쌓은 고구려식이며, 2호와 4호 돌무지무덤은 기단과 계단 외부를 돌로 쌓았지만 내부를 흙으로 채웠다는 점에서 백제식이다. 기단부만 남은 1호 돌무지무덤은 두 기의 무덤이 남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남쪽 무덤은 고구려식이고 북쪽 무덤은 백제식이다. 3호 돌무지무덤은 밑변 50m. 높이 4.5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4세기 후반경의 왕릉으로 추정되고 있다.
2호분
겨울비가 말끔히 먼지를 씻어 내려 그런지 고분들은 마치 세수를 한 듯 말간 얼굴로 시민들을 맞고 있다. 반려견을 데리고 걷는 사람, 간혹 젊은이들이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이 보이지만,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고 집안에서의 답답함을 풀기라도 하는 듯이 할머니 몇 분은 의자에 박스를 펼쳐 놓고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신다.
1호분은 발굴중
소나무들이 세월의 풍상을 담은 듯이 줄지어 서 있고, 단풍나무는 더욱 빨갛게 날씨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장대비를 맞고 많은 나뭇잎을 떨구고 섰는 나무들은 비워 낼 것은 비워야 함을 보여준다. 앞으로 올 계절을 준비하는 듯 보인다.
지난봄 무덤 앞에 화려하게 피워냈던 철쭉의 소담스러운 모습이 떠오른다. 그렇게 세월은 말없이 가고 오며 수백 년, 수천 년의 역사를 품고 우리에게 의연한 모습으로 서 있다.
차츰 기온은 더 내려갔는지 바람이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며 세차게 불어 제친다.
5호분
갈 사람은 어서 가라는 듯 등을 떠미는 것 같지만 고분군은 내 발길을 잡아끌어 다시 한번 돌려세운다. 더욱 찬찬히 나무들과 역사의 현장 같은 고분군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사진을 찍어 내 삶의 한 페이지에 담아 본다.
고분군과 롯데월드타워
*photo by young
글/안신영 작가, 시인, 1994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 전 수필문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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