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피카소와 도자기
[특별기고]피카소와 도자기
  • 안신영 전문위원
  • 승인 2021.10.2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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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새로운 도전,  도자기

피카소 전시회를 보러 갈 때마다 나의 관심은 도자기에 집중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도자기 공예 전공의 학생이 난생처음 피카소 도자기를 맞닥뜨렸을 때의 경이로움은 지금도 생생하다.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피카소

우물 안 개구리였던 좁은 시야의 나에게 도자기의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도공이기도 한 피카소였기 때문이다.

 도자기를 만들어 말리고 굽고 유약을 바르는 일련의 과정을 하면서 옛 도자기를 모방하는 정도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성하며 만들었다물론 실험적으로 여러 가지 현대식 도자기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예를 들면 그림을 그려 그림과 같은 오브제를 만들어 응달에 말리고 가마에서 나왔을 때  유약을 바르고 다시 구워져 나온 도자기를 나무판자에 붙여 구성했는데 벽에 붙이는 그림 타일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피카소 도자기의 영역은 상당히 큰 세계였다. 작은 물병, 큰 물병, 대형 꽃병, 동물 인형, 여인의 두상, 석판, 벽돌 등 자유롭고 상상력은 무한한 것처럼 보였다.

 

피카소 미술관 큐레이터 요한 포플라르(johan popelard)가 쓴 글을 보면

전후 시기에 공산주의를 신봉했던 피카소에게, 삶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도예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예술적 유토피아와도 같았다. 소위 화가다 예술가다 하는 사람들의 거짓된 연출과 자만심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피카소는  도예 작업실에서 수공업과 공작(bricolage)에 가까운 순수한 창작 형태를 발견했다. 미술사학자 겸 큐레이터 장 카수는 1949년에 이렇게 썼다. "피카소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노동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지적 탐구로 얻는 기쁨보다 재료를 직접 만지면서 느끼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피카소는 이 시기에 석판화와 함께 도자기를 집중적으로 작업하면서, 일부 특권층만 향유하는 예술이 아닌 대중적인 예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피카소는 도자기에 관해

"내가 만든 도자기를 모든 시장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브르타뉴 지방의 마을이나 다른 어디에서나 여인들이 우물에 물을 길어 갈 때 내가 만든 물병을 들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망사를 두른 여인의 두상.
벽돌 조각, 여인의 두상.
포도송이와 가위로 장식한 사각 접시.

전시장에서 <망사를 두른 여인의 두상> 뒷면을 보면 여인들이 두른 망사를 도자기로 섬세하게 표현을 했다. 우리나라에서 옛 여인들이 머리카락이 흘러내리지 말라고 흰색 옥양목 천이나 수건을 둘렀던 것처럼 유럽 여인들은 뜨개실로 짠 망사를 둘렀던 것 같다. <벽돌 조각, 여인의 두상>은 움푹 팬 흰 벽돌 조각의 요철을 활용하여 3차원의 얼굴을 탄생시켰다.

교수님께서 타일을 제작해 보라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서툴지만 만들면서 신기해했고 유약을 바르지 않고 기와 막새 문양을 작게 초벌구이만 해서 만든 펜던트를 노끈을 꼬아 목걸이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내가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걸이라는 자부심으로 즐겨하고 다녔다.

부드러운 흙을 만질 때 손에 닿은 흙의 질감이 진흙을 갖고 놀았던 유년의 추억까지도 불러오는 마법의 순간처럼 좋았던 기억이 있다. 도자기를 잘 만들 수 있을 때까지 흙 성형을 해야 하는 고단한 작업이 있긴 하지만 힘들어도 흙을 만지는 일을 상당히 좋아했다. ( 흙 성형-흙 반죽인데 우리는 도자기를 만들기 전에 고령토를 발로 밟아가며 다져 주거나 나무망치로 두드려서 점토를 찰지게 만드는 과정이 끝난 후에 비로소 손으로 밀가루 반죽하듯이 다시 주물렀다. 반죽한 흙을 낚싯줄로 자르면 흙속에 공기층이 보이지 않아야 반죽이 잘 된 흙이다. 그때 비로소 도자기 성형으로 들어간다. 물레에 돌리거나  손으로 코일을 만들어 쌓아 올려 원하는 것을 만들기도 하고, 판자같이 넓적하게 만들어 그림을 그려서 조각내어 말리고 유약을 바르고 구워 낸다. 물레 돌리기는 쉽지 않아 처음부터 할 수 없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 돌릴 수 있다.)

월계관을 쓴 아이의 두상이 있는 타일.
여인의 두상이 있는 석판.

피카소의 도자기는 한마디로 놀랍다. 오래 전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대하고 만들었던 도자기와는 차원이 달랐다유약을 바르고 다시 색을 입히며 그림까지 그리고 나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탄생할 때가 많다. 1200도의 불가마  속에서 새로 탄생하게 때문에 불의 예술이라고도 하는 도자기는 열기가 식은 다음에 꺼내보고 운명이 갈린다도자기 가마 옆에는 산더미같이 깨진 도자기 동산이 있다. 예술가들은 본인이 원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 때 가차 없이 망치로 두드려 깼기 때문이다.

 

거침없이 그린 그림.

우리의 도자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 현대로 들어서서는 도자도 다양해져서 놀랄 일이 없지만 1970년대 학창 시절엔 많이 놀라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스페인의 도자기 흙은 우리의 흙처럼 좋은 것은 아닌가 보다. 우리의 고령토가 세계 최고라고 배웠는데 고려청자의 비색, 조선시대의 백자처럼 맑고 빛나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가 보다. 물론 유약에 따라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고유의 고려청자. 조선의 백자, 분청과는 사뭇 다른 색채감, 질감, 형태, 크기는 우리와는 천지 차이다. 개인적 생각에  분청자기에 가까워 보이는데 피카소의 독특한 예술세계는 마치 동심으로 이루어진, 마음껏  놀며 의미를 부여해보고 싶은 충동의 찰흙놀이를 발견하는 것 같다.

순진무구함이 엿보이는 작품들... 올빼미와 여인, 부엉이, 올빼미, 비둘기와 염소들.

목욕하는 여인 장식의 꽃병. 
나이프, 포크, 반 자른 사과와 껍질이 있는 접시

피카소의 작품 어디에서나 여인의 모습은 빠질 수 없다. 그의 자유분방함이 도자기에서도 엿보인다. 꽃병에 여인의 나신을 넣다니... 접시엔 도르르 말리는 사과 껍질과 튀어나올 듯한 씨가 보이는 반 자른 사과 모양을 양각으로 돌출되게 만든 뒤에 색칠을 하여 정물화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올빼미가 있는 스페인 접시. 
  정면,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 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

<올빼미가 있는 스페인 접시>- 귀여운 올빼미가 당당히 서서 노려 보는 모습이 마치 기사 같다. 꽃을 담는 작고 <정면, 측면 얼굴과 두 올빼미 장식으로 두 개의 손잡이가 달린 꽃병> - 꽃을 꽂는 작고 예쁜 꽃병만 보아 오던 나의 눈에 이렇게 어마 무시하게 커다란 조형에 술로 만들어진 꽃병을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을 상상해 보시라.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  
무릎 꿇은 여인 술병

<알을 품고 있는 비둘기> - 피카소의 작품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비둘기를 이번에는 도자기로 알을 품게 했네요. 프랑스 시인 장 콕토가 "자네는 비둘기의 목을 비틀어서 비둘기에게 생명을 불어넣는군"하고 말했대요.

<무릎 꿇은 여인의 술병>- 하룻밤 말리고 오브제가 꾸덕꾸덕 해졌을 때 피카소는 여기저기 눌러 오목한 부분을 만들고 통통한 팔을, 허리와 목을 강조하기 위해 점토를 구부려서 여성의 모습을 완성했다.(요안 포플라르의 글에서)

풍경, 부부, 연인과 원숭이: 세 개의 원형 장식이 있는 술병.

<풍경, 부부, 연인과 원숭이: 세 개의 원형이 있는 술병>- 술병을 돌아가며 보면 세 개의 원안에 풍경, 부부, 연인과 원숭이 그림이 들어 있다.

토너먼트 장면이 있는 접시, 갑옷 입은 기사. 
부엉이가 있는 원형 꽃병.

피카소는 접시를 투우장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였고 자신의 최애 마스코트 올빼미, 부엉이, 비둘기들을 회화, 데생에서 수없이 그렸듯 도자기에도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형대는 도자기 제작자가 만들고 하룻밤 말린 것에 모양을 구부리거나 움푹 파이게 하거나, 색칠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피카소는 점토를 가늘고 길게 만들어서 자르고, 조각하고 붙였다. 또한 점토를 구부리고, 성형하고, 조합하고, 거기에 화장토, 유약, 파스텔을 칠했으며 점토를 구운 뒤에 점차 나타나는 색깔의 변화를 관찰하였다고 하는데 실험 정신이 투철하고 천진 무구한 어린애의 모습이 발견되기도 하는 장면으로 생각된다.

부엉이 세 마리가 있는 작은 고딕 술병.  
아룸 꽃이 있는 고딕식 술병.
목신이 장식된 적은 술병. 
 올빼미.

도자기는 조각도, 회화도 아니거나, 또는 조각인 동시에 회화이기도 하면서 예술 분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1961년 발로리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자기와 조각 간의 관계를 묻는 말에  피카소는

"굉장히 비슷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도자기의 경우 이미 만들어진 형태 위에 유약을 바르고 색을 입히죠. 그리고 그 위에 그림까지 그리면 처음과는 전혀 다른 오브제가 탄생합니다."

비주류로 인식되는 소박한 예술, 장인의 예술, 공방의 예술인 도예는 피카소에게 장르 간의 경계를 재정의할 방법, 더 정확하게는 이 경계를 자유롭게, 끊임없이 즐겁게 넘나들 수 있는 통로를 알려주었다.

"조각은 무엇인가? 회화는 무엇인가? 우리는 진부한 생각과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정의에 매몰되어 예술가의 역할이 새로우 생각과 정의를 만드는 것임을 언제나 망각한다."라고 피카소는 말했다.

예술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도전했던 피카소에게 도에는 신선한 자극제가 되어 준 것이다.

이미 60여 년 전에 새로운 정의를 내린 피카소! 역시 그는 천재 예술가임이 분명하다.

연주자들로 장식한 접시. 눈과 황소가 있는 스페인 접시.
 후면: 황소 머리
여인의 누드가 있는 가젤. 머리 빗는 여인의 누드가 있는 가젤. 
물고기를 든 손 장식의 원형 꽃병. 

이 작품은 "손가락을 벌린 두 손은 마치 도자기를 빚고 있는 도예가의 손처럼 보인다"는 평을 받고 있다.

* 가젤- 불쏘시개이면서 도자기를 구울 때 받침대 역할을 하는데 피카소는 여기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줬다.

*photo by young: (작품 사진-도록 캡처)

*참고: PICASSO In the 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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